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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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1.27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상대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한 말이 나에게 돌아와 축복이 되기도 하고,
나를 상하게 하는 덫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5-6)
간음 현장에서 여인을 잡아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이런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는데
예수 선생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답을 말하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하기 위해서입니다. (6절)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여인의 생사가 결정될 뿐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율법대로 죽이라고 하면 살인을 방조한 것이 되어 로마법에 걸리고
죽이지 말라고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악한 자가 됩니다.
말은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한 말은 상대에게 가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영향을 주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6-7)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땅에 쓰셨습니다.
흥분한 무리들은 예수님께 집중하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귀를 기울인 무리들에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여인을 향하던 사람들이 그 말에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여인의 죄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을 보며 흥분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내면을 보게 합니다.
자신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모두 돌아갔습니다.
변화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시작됩니다.
남의 죄만 볼 때는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내면을 바라보면서 시작됩니다.
속에 깊이 숨겨 놓고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빛이 되었습니다.
어둡고 깊은 곳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자신의 숨겨 놓았던 더러운 것들이 밝히 드러나자,
사람들은 당황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10-11)
예수님의 말씀이 죽음에 문턱에 있던 여인을 건져냈습니다.
죄로 인해 사망의 자리에 갔던 여인을 구원했습니다.
정욕의 노예로 살던 여인에게 죄의 고리를 끊게 했습니다.
말은 이처럼 큰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저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이런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나의 말이 살리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상하고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오늘 살리는 말을 하기 원합니다.
축복하고 세워주는 말을 하기 원합니다.
내 말의 축복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