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을 더 보내신 이유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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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1.08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우리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주님을 믿고 영접합니다.
주님을 좇는다 하면서도
여전한 악을 행하고 싶은 욕망들
제대후
한참 육체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입니다.
꿈속에서 아리따운 여인이
나를 유혹했습니다.
그때 나의 대답이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그 여인을 떨치고 나왔습니다.
꿈에서 깼습니다.
그 이후 교회내 여자 자매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함께하는 주님의 지체로...
하지만 석달쯤이 지나고
다시금 성별이 구별 되었습니다.
여전히 악한 생각이
눈으로 생각으로 몸으로 득죄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빛을 좇는 가운데에서도
어두움을 더 사랑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웠습니다.
찬양할때는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일을 하듯
사람들 앞에 나타내었지만
어두움에 사로잡혔을 땐
더 어두운 곳만을 찾았습니다.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리더의 재목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지난날의 홀로 되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실컷 컴퓨터로 악을 행하다 퇴근 하였을 땐
아내에 대하여 모든 말들이
강퍅하게 반응합니다.
내 자신이 나를 정죄하면서
보이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론
정결한 맘으로 하루를 잘 보내었을 땐
아내의 수고를 더 알아주고 도와줍니다.
내 속에 빛이 충만하기에
방황의 때에
눈으로 생각으로 몸으로
어둠의 일들에 쩔어 보았기에
그 달콤함을 잘 압니다.
이것들이 언제나 나를 유혹합니다.
이겨내었을 땐
잠자리에 들면서 개운하지만
득죄 하였을 땐 입맛이 씁니다.
우유부단한 나!
죄악의 고리를 끈질기게 붙드는 나 !
그래서 이곳
한적한 캐나다 윌리엄스라는
작은 도시로 보내셨나 봅니다.
애굽의 화려한 문명에서
광야로 내몰렸던 모세처럼
그렇다고 내가 모세만큼의
충직한 리더의 재목이 아님을
이제는 잘 압니다.
옛적엔 착각도 많이 했습니다!
여호수아 설교말씀에
아간의 죄악으로 말미암는
후대의 사건들을 깨달으면서
왜 능력도 없는 나에게
자녀를 세명씩이나 주셨을까
나를 자녀라는 안전 그물망에
넣어 두실려고 그러셨나 봅니다.
누구는 세상의 악함이 두려워서
아들만 놓고 싶다 합니다.
한 아내
한명의 아들로서는
내가 훈련이 제대로 안되었기에
아들과 7년의 터울을 두고
두 딸들을 보내셨습니다.
딸 가진 아버지로서
행동 똑바로 해라! 하십니다.
칼 같은 아내를 옆에 두셔서
조그마한 악의 새싹부터 자르게 하십니다.
주님앞에 부끄러운 죄악을
벌거벗듯 드러낸 이들과
그 죄악을 화려함으로 가린 이들
드러낸 이들의 낮아짐과
가린이들의 강퍅해짐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님을
더 이상 어둠속의 일들로
외면하지 않기 원합니다.
날마다
빛을 좇는 자녀로
거룩을 이루어 가며
온전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