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요한복음 16:20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1 여자가 해산의 때에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16:22: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은 죽음의 근심과 기쁨을 출산의 근심과 기쁨으로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시작되는 이땅의 생명은 거의 무에서 출발해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태어난 외손자를 돌보면서 느낀 것은, 첫 인간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태어난 후 몇 년간에 걸쳐 전혀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첫 인간이 완벽하게 창조되지 않았다면 세대간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중의 아기가 해산의 고통을 지나 이 땅의 삶이 시작되면 기쁨도 잠시이고 다시 죽음이라는 문제에 봉착하면 근심이 시작됩니다. 저는 20대에 가까운 가족 3명을 6개월 간격으로 연속으로 잃었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죽음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부터는 그 근심이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아직 죽음이 기쁨까지는 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너희 근심이 다시 기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공만을 생각하면 죽은 후의 그 기쁨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마치 엄마 뱃속의 아기가 밖의 세상을 전혀 모르듯이 나도 죽음 후 전개되는 세상이 상상이 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기쁨을 못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지나면, 아기가 엄마의 뱃속을 통과한 후 이 땅을 보는 것과 같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것이 전개될 것이고,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죽음을 출산의 기쁨을 예로 들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증조모님의 기일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증조모님이 이 땅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셨는지 알 수 없고,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기도를 해야할지도 알수 없으나, 최근 태어난 나의 외손자를 생각하면 지금 주님을 만나서 가문에 주님을 전할 수 있는 나의 인생이 정말 가치가 있고 기쁜 인생임을 느낍니다.
적용하기) 나의 믿음이 후대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이 부분을 계속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