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7-36
“연민”
하루 종일 말씀이 없으셨다. 토요일 저녁 아내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고, 나는 TV를 켜고 ‘음악프로그램’을 듣는다.
뛰어난 가수들의 열창을 들으면서도 말씀에 매달렸다. 놀랍게도 주님의 마음이 음악에 젖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소란 속에 고요함이었다.
헬라인들이 주님을 찾아온 자리에서 유대인들의 불신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이방인조차 믿음을 향해 나아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벽창호처럼 귀를 막고 있었다.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물러서는 저들의 무지함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보내신다.
너희들 왜들 그러니?
내가 너희들을 위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아느냐?
내가 걸어가는 길이 바로 너희들을 위한 것인데,
나 역시 피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걸어가는데,
왜 이다지도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
안타까움에 연민의 눈으로 저들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외치셨다. 주님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고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그 음성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예수께 말한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음성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 왔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자기 꾀에 빠져 스스로 무덤을 향해 걸어갔다. 십자가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스가랴를 통해 예언하신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으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요한복음 12:34
오늘 이 짧은 본문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향해 하소연 하시며 자신의 죽음을 공포했다. 인자가 들려야한다는 말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저들도 알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메시야는 죽을 수가 없었다. 죽어서는 안 되었다. 공자 앞에 문자를 썼다. 말씀의 원조이신 그리스도께 율법을 들고 나와 주님을 거부하였다.
명절에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방문하셨다. 40년 광야생활을 상징한 무기력한 인생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서른여덟 해 동안 병든 자를 고치셨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했으나 저들의 의심은 끝이 없었다. 참으로 모진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강퍅할 수 있을까? 이처럼 불신의 벽을 쌓을 수 있을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틀을 침묵하신 끝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네가 그들과 같지 않느냐?”
천둥처럼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앞에 소스라치게 놀라 무릎을 꿇었다. 책망의 음성을 들으며 하염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는다. 무지렁이 같은 자를 위하여 오늘도 일하신다. 어두워진 내 영혼에 불을 밝히시고 불충한 내 자신을 깨닫게 하신 주님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