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19
“죽이려는 자와 죽으러 가는 자”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유대 사회를 강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베다니로 몰려왔다. 정치권은 극도록 예민해졌다. 민심이 예수님에게 쏠리자 대제사장들까지 나서 나사로까지 제거하기로 모의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전국 각지와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왔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자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는 말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베를 동인 채 온 동네 사람들 앞에 나타난 나사로를 보면서 그들은 예수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 마지막 재앙으로 바로를 무너뜨린 역사적인 날이다. 모세가 보였다. 주님이 보이자 비로소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꿈꾸었다.
이튿날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온 큰 무리가 종려나무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그들은 목 놓아 외쳤다.
어린 나귀를 타신 주님의 모습을 보라.
위풍당당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왕의 행차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소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친근한 모습이었다. 배려였다. 누구나 다가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한복음 12:15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스가랴를 통해 이미 예언된 말씀이었다. 이처럼 구약 곳곳에 주님의 흔적들이 넘쳐났지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은 훗날, 주님의 부활 후에야 제자들이 깨닫게 된다.
한번 불붙기 시작한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죽은 자를 살리셨다’더라. 맹인을 고치시고 서른여덟 된 병자가 말씀 한마디에 일어나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졌다.
유월절에 이러한 주님의 등장은 민족적 지도자로 부상하기에 충분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자신들의 눈앞에 서계셨다. 그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꿈꾸는 것 같았다. 껍데기뿐인 유월절이 아니었다. 탈로마를 꿈꾸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선을 앞두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대통령이 바뀌면 조금 나아질까라는 기대감에 부풀지만 그동안 어느 누구도 기대를 충족시키지를 못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들과는 달리 별다른 출마의 변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예수를 향한 민중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폭발적인 기세에 주눅이 들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이 쓸데없게 되었다고 자조 섞인 넋두리를 내뱉기에 이르렀다. 고개를 떨군 저들의 모습 속에서 나또한 고개를 숙인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귀를 타셨다. 한손에는 구원을 또 다른 한 손에는 공의를 가지셨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모습으로 내게 오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면 주님을 만날 자격이 주어지는, 이 놀라운 권세를 은혜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일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신다. 죽이려는 자들에게로 나아가신다. 골고다를 향하여 성큼 발걸음을 내디디셨다.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