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5-54
“하나 되게”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동굴을 향했다. 나사로가 나오지 않았다면 만회하기 어려운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베로 동인 채 그들 앞에 선 나사로를 바라보면서 놀라움과 감격에 젖었다.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두 종류의 반응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을 믿었다. 하지만, 개중의 몇은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에게 고소했다.
그들은 표적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신적인 권위임을 인정하였으나 그들의 굳은 마음에는 도무지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즉시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다. 표면적 이유는 민중봉기였으나,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시기심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전유물처럼 누리고 있던 세상적인 부와 명성과 기득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요한복음 11:48
그들의 입술에서 뜻밖의 고백이 나왔다. 이미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음에도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고 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들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저들의 염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낱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치졸함이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한복음 11:50-52
그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예언은 민족과 더불어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 죄가 되는 시대였다.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해야할 산헤드린 공회가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합법을 가장한 공권력의 남용의 대표적 사례이다.
정치권에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가 진행되자 주님께서 에브라임을 찾으셨다. 그곳은 빈들이 가까운 곳이었다. 살벌한 세상을 잠시 벗어나 주님은 빈들에 머무신다.
그곳은 하나님과 만남이 있는 곳이었다. 주님은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 경영을 위한, 구상에 몰두하신다.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