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한복음 11:28~44
재작년 유방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일이 떠오릅니다.
암환우들 사이에 서로 통하는 한가지 말이 있습니다. "수술은 별 것 아니다. 항암이 죽음이다."
한쪽 가슴을 완전히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주변에서 많은 걱정의 말들을 들었습니다.
항암받다 죽으려고 그러느냐? 항암대신 자연요법을 받아라! 어느 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항암을 안 받았는데 재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은근히 믿음을 자랑했습니다.
심지어는 제약회사와 의사들간의 음모론(^^)까지 글로 보내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이런저런 소리들로 마음의 요동이 있었지만
"하나뿐이 생명을 가지고 무모한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6차에 걸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칵테일이라고 불리우는 여러가지 항암약을 1박2일에 걸쳐 맞고 나오면 독한 약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일주일동안 수족을 동인(44절)채 무덤 속에 누워있는 것처럼 살아도 죽은것처럼 죽지도 못한 상태로 숨만 깔딱깔딱 쉬면서 꼼짝없이 소파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정도 항암약물이 체내에서 다 빠져
나가고 나면 1차~3차를 받을 때 까지는 그래도 2주간의 회복기간에는 부지런히 운동도 하고
억지로 여러가지 먹을 것들을 전투적으로 먹어댔습니다.
그러나 점점 독한 항암약으로 허약해지며 4~6차는 도무지 힘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무덤 속에서 죽어있던 저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건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느냐?"는 예수님의 양육에도 여전히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며
동문서답을 하는 마르다처럼 내 자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눈 먼 상태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항상 "아나이다(요11:22)"를 외치며 교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지나왔습니다.
지난주 어린 시절 저의 무자비한 폭력의 피해자인 둘째 딸이 전라남도 땅끝으로 홀연히
떠나버렸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민하던 딸이 괴로움에서 도망하고
숨막히는 가정에서 도망하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혼자 일자리를 얻어 가버렸습니다.
딸이 떠나는 사건 앞에서 지난 날 먹고 사는 문제, 좀 더 나은 환경을 간절히 원하며 비본질에
골몰하느라 가장 중요한 자녀들의 구원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의 죄에 대해
"있어야 할 일"이 드디어 임한 것임을 목장 공동체를 통해 들으며 "옳소이다!" 인정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한 생명을 얻고자 이 땅에 낮아짐으로 오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생명에 대해 제가 얼마나 구원을 만홀히 여겼던가
회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면 스스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비아냥 거리는 무리 속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는 로마 군인 속에 제가 속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침뱉고 있는 제 모습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항항치료를 받기로 결정하며 "하나뿐이 없는 생명"이라고 내 목숨만 귀하게 여겼습니다.
목숨 하나 지키기가 그렇게 처절한 고통임을 나의 육체로 절절하게 체험했음에도
이제서야 겨우 아픈 자녀의 목숨과 구원이 이토록 아프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항암치료와는 비교되 되지 않는 고통을
값으로 치루셨는데 저는 그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무시했고 자녀의 생명과 구원에 관심이 없던
죄인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내 죄때문에 고난 중에 있는 자녀로 말미암아
희미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