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31-42
“엇갈린 시선”
BC 168년 알렉산더 대왕 때에,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체의 예배 행위를 금지시켰고 하나님 대신에 제우스 같은 그리스의 신들을 성전 안으로 들여놓았다. 돼지를 잡아서 그 머리를 성전 제단에 놓고 유대인들에게 예배를 강요하고 제단에 돼지피를 뿌려 성전을 더럽혔다. 이때 마카비 가문이 일어나서 유대를 회복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고 8일간 다시 봉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전절이 제정되었다.
‘봉헌’이라는 뜻을 가진 이 수전절에 주님께서 성전을 방문하셨다.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이 그들 앞에 나타났으나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쌌다. 다짜고짜 ‘그리스도이면 밝히시오’ 다그치며 대들었다. 그들은 주님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시기와 죽이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확정판결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선언하시자마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을 들었다.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지 않기로 굳게 작정한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주장하는 신성모독죄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대응하셨다. 논쟁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셨다.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거기 거하시니” 요한복음 10:39-40
실랑이 끝에 멱살을 잡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 다시 베다니로 가셨다. 여기서 ‘다시’라는 단어를 주목해보자. 세례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던 곳이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곳이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고 가실 때마다 늘 주님께서 들리던 곳이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군사령부가 주둔했던 길갈처럼 베다니는 주님의 공생애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유대 변방이었고 이방 땅이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다시 방문하셨을 때, 그들은 요한의 외침을 기억했다. 주님을 바라보자 이년 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며 탄성처럼 외쳤던 세례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급기야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정치권은 때를 만난 듯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논리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을 돌로 치려하였다. 그러나 요단강 동쪽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다.
엇갈린 시선이다.
우리들은 흔히 전도를 하면서 오늘날도 이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표적을 전혀 행하지 않았지만, 오늘 대다수의 베다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외쳤던 요한의 증거가 참되다고 인정하였다.
믿음은 이적에서 난다고 하지 않으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사도바울의 로마서 말씀을 기억하자. 유대의 변방에서 드려진 베다니의 수전절을 곱씹으며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