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19-30
“물동이를 버린 자 돌을 든 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한복음 10:16
어제 지나쳤던 본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찾다가 오늘에서야 내 이름을 찾았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주목하셨다. 그들을 부르신다.
그동안 주님께서는 혈육인 유대인들에게 나아가셨다. 그들에게 보여주시고 애타게 호소하셨다. 그러나 끝내 외면한 유대인들을 버리고 이방인을 향하여 하늘 문을 여셨다.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이라는 또 다른 내 이름이었다.
단지 안식일에 환자를 돌보셨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주님을 귀신들렸다고 몰아갔다. 그들을 향해 통렬한 반전이 시작되었다. 비록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으나 그들의 민족적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방인들을 지옥의 불쏘시개라고까지 여겼다. 오늘 주님의 선포는 그들의 허를 찌른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안식일에 골라가며 연약한 자들을 고치신 것은 주님의 의도된 몸짓이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심을 온몸으로 보여주셨다. 똑똑히 보라는 주님의 강력한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율법에 갇힌 그들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볼 수 없었다.
오늘 솔로몬 행각에서 주님을 만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쌌다. ‘그리스도이면 밝히시오’ 다그치며 대들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이적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까지는 동의했다. 그러나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주님의 정통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들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강한 부정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한낱 변방 갈릴리 출신이었다.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은 목수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씀을 애써 외면하였다.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학연과 혈연 지연 등으로 무장된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들은 애써 체면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영원한 생명을 탐구하면서도 영생을 외치시는 주님을 인정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배움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굳어진 지식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목말라 우물가로 나아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명백히 밝히셨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여인을 주님께서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시고 자신을 폭로하셨다.
‘내가 그라’ 이 한 마디에 그녀는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뛰어갔다.
오늘 자신을 찾아와 다그치는 유대인들을 향해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 되심을 그리고 그리스도이심을 만방에 선포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