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3-23
“빛이 있으라”
오랜만의 연휴였다. 어머님 생전에는 서른 명 이상의 많은 친지들이 방문을 하였다. 며칠 전부터 시장을 보고 전을 부치고 늘 분주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어머님이 소천하신 후, 우리 집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우스개소리로 ‘올해도 떡라면이나 끓이지’라며 서른세 해, 북적거렸던 때를 그리워했다.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 전 백세 생일잔치를 하신 사돈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늘 신세를 져왔던 터라 이런 때 조금이라도 갚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난 삼일동안 가시는 길에 함께 동행했다.
지난 삼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해왔던 말씀 묵상은 장례식장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난여름 휴가 때에도 거르지 않았다. ‘집사님은 휴가가 아니라 부흥회를 다녀왔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끈기가 있는 줄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작심삼일이 내 인생의 발목을 늘 잡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내가 좀 심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장례식장까지 와서 말씀을 붙들고 있는 나를 향한 애정 어린 비난이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피곤한 수요일 저녁 일찍 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카톡이 와있었다.
“집사님~ 풍성한 명절 보내고 계신가요?? 저에겐 값진 휴식 기간이었답니다~ 명절에도 멈추지 않는 집사님의 큐티 말씀을 보며 은혜와 말씀 묵상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요~ 내일 웃는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나의 조그마한 열심을 보면서 도전을 받고 있다는 말에 주목했다.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인생의 전환점을 만난다면 내가 오늘 하는 이 일이 참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가련한 인생을 보셨다. 그는 날 때부터 불행으로 시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보는 것 이상 최고의 선물은 없었다. 그를 고치셨다. 한 번도 성전을 출입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 일의 팩트는 혼돈 속에 살아왔던 인생에게 ‘빛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이다. 새 창조가 한 인생의 삶 속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걸인이 단박에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그를 고쳤다는 것에 시선이 꽂혔다. 그를 아버지에게 데려가 아들이 맞느냐고 확인까지 했다.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한 인생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그들은 인정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한다. 율법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사단인 검사는 늘 죄를 묻는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묻는 사단을 향하여 변호사이신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신다.
그는 분명히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못 박히신 손을 내밀며 그는 이제 이길우가 아니라 주길우입니다. 그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은혜이다.
새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