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45-52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에 능통한 자들이었다. 선지자가 갈릴리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라 호적하러 베들레헴 여행 중 그곳에서 태어나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들의 시선은 늘 예루살렘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연 그리고 학연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당시 종교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제사장 그룹 모두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민초들은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주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메시야는 공허한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고 종교적 자유에 목말랐다. 그들은 제2의 다윗을 기다렸다. 민족의 지도자 그리고 영웅을 기대했다. 그들의 마음에 그려진 밑그림에 퍼즐처럼 맞추려고 했다. 편견이었다. 그러한 기대감을 채우기에는 예수님은 한없이 모자랐다. 아니었다.
민심이 양분되었다.
믿는 자들과 말씀을 안다고 하는 소위 똑똑한 자들로 나뉘었다. 예수님의 옷차림과 갈릴리 방언 등으로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단정한 사람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릴 수 없었다. 편견의 안경을 쓴 자들이었다.
그러나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주님을 잡으려고 했던 아랫사람들의 고백이 놀랍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요한복음 7:46
논쟁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굴복하였다. 초막절 마지막 날 서서 외치셨다. 그 자리에는 자신을 체포하려고 온 무리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설교가 아니었다. 내일을 넘어 모레를 가르치셨다.
목마른 자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누구든지’ 오라고 했다. 차별이 없는 부르심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외치셨다.
이미 에스겔을 통해 예언된 말씀이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중략)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중략)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 에스겔 47:1-8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온 성전을 적시고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었다.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기만 하면 되는데, 믿기만 하면 되는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편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주님을 바라보았다.
오늘 나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흐른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샘물이 되신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받아드리는 모든 자에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음성이 들리는 자가 복되다. 우리가 할 일은 편견의 안경을 벗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에스겔에게 이미 보여주셨다. 성전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흘러 죽음의 바다 사해를 살리는 생명수가 된 것처럼 죽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리고 나를 통해 그 물이 흘러가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