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48-59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가버나움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자신을 찾으러 바삐 달려온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배불리 먹었던 군중들은 예수님을 떡 문제를 해결할 경제적 메시야로 바라보았다. 배부름에 취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줄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다리듯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을 가져온 유월절을 기다렸다. 그들에게 유월절은 제2의 출애굽을 기대하는 명절이었다. 탈로마를 부르짖으며 나라의 독립을 꿈꾸던 그들에게 벳새다 광야 만찬은 저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치적 메시야를 만난 기대감으로 충만한 그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자신을 폭로하신다. (요한복음 6:54)
문자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배불렀으나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제 본문을 잊지 않았다면 그들의 혼란은 기우에 불과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한복음 6:47
결국 말씀이신 주님을 믿는 것이 바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의 음성을 기억했다면 출애굽 당시, 우슬초로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 양의 피가 바로 주님의 보혈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야를 향한 기대감은 주님의 살과 피가 아니었다. 나라의 독립이었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꿈꾸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메시야라는 프레임에 갇혀 바로 눈앞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론의 금송아지였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신령한 떡이라고 여겼던 만나를 먹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가 광야에 뼈를 묻었다. 오늘이라는 현실에 필요한 독립과 배부름이 더 눈이 갔던, 수많은 군중들은 회당에서 주님을 만났으나 자신들이 규정한 우상에 갇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오늘 가버나움 회당에 참석한 군중들은 분명히 교인이었다. 주님이 그곳에 계셨고 설교가 선포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교회를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잃어버린 양들이었다. 오늘에 취해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저들의 태도는 한국교회와 많이 닮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빵만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영원한 나라를 가르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우상을 버리기 전까지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세상의 것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