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36-47
“부활의 노래”
오병이어의 이적을 맛본 군중들은 서둘러 주님을 찾았다. 여러 척의 배를 나누어 타고 입소문을 따라 제자들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그들은 적어도 주님보다 한 발 앞서 가버나움에 당도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이미 와계셨다. 산으로 가셨던 주님께서 자신들보다 먼저 그곳에 계셨다.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랍비에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당황스러운 그들의 첫 질문이었다. 바다를 가로지르지 않고는 육로를 통해서는 자신들보다 앞설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배를 동원하여 가버나움으로 왔기에 배 없이 자신들보다 앞서신 주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더 놀라운 말씀으로 자신을 폭로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오늘 본문은 반전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너희들은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판결문을 낭독하셨다. 분명히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나아왔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오직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왔다. 그러한 자들 앞에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자신들이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어린 아이가 내놓은 도시락이 어른 장정만 오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다. 남은 음식을 열 두 광주리에 거둔 현장에 있었던 자들이었다. 떡에 미쳐 서둘러 노를 저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을 만났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선입견이라는 장벽이 그들을 가로 막았다. 그들 앞에는 요셉의 아들 예수만 보인 것이다.
내가 그랬다.
우리 가정의 신앙세대주이셨던 큰누님께서 만난 예수를 나는 알지 못했다. 교회에 가자고 재촉하는 말을 콧등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예수는 사생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귀를 열지 않았다. 당연히 마음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믿지 않고 손사래 치는 그들을 향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하나도 숨김없이 보여주신다. 아직도 썩을 양식을 찾고 있는 그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37-40
결국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노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값없이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신 이사야 선지자의 목소리가 참 크게 들려온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리고 오늘 결정적인 말씀을 하신다.
아멘을 두 번 외치신다.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진 자라고 하신다. 영생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주님을 영접한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다.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 드러난 하나님 나라이다.
“마지막 날에 다시 이를 살리리라”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할렐루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한복음 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