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어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네 남편을 불러오라(16절)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구원의 생수를 마시기 위해 내가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할 죄와 아픔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저의 목마름은 공감 장애, 관계 결핍 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감 장애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고, 무엇보다 말씀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의 안정적인 사랑과 보살핌으로 '잔잔한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 사랑을 느끼고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저에게는 굉장한 진보입니다.
그런데 직장 내에서는 다른 사람들만큼 관계를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이유(관계의 폭과 깊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로 인한 결핍을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네 친한 친구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저에게도 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수라는 것이고.. 저의 행동만큼 사실은 제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공감 장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예전에는 마음의 온도가 영하였다면 지금은 영상으로 온 것이 맞지만 아직도 찬 바람이 부는 초봄 날씨로 영상 10℃#65279;에서 15℃ 사이를 왔다 갔다합니다ㅜ)
저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께 "저에게는 친한 친구가 없어요." 말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친한 친구가 여럿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친한 친구가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적극 동조해 주십니다.
그리고 '관계 결핍'이라는 육적 목마름을 채워주실 것을 강구하는 저에게
저의 은밀한 죄로 인한 '영적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시며
저의 아픈 상처와 죄에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람들은 상처만 주는 존재이구나. 믿을만하지 못하구나. 어차피 일시적인 관계일 뿐이야.'
생각하며 사람들에 대해 두꺼운 마음의 장벽을 높이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았던 상처들에 대한 분노로 더 혹독하게. 더 냉랭하게.
그렇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무시하고 거절하고 판단하고 외면하며
행여나 사람들이 저와 친해지려고 다가오면 부담스럽게 여기고 도망가기 바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죄와 아픔의 이야기, 영적 목마름의 근원이었습니다.
적용으로 이런 갈급함의 느낌을 유지하도록 연습하겠습니다.
저의 연약함과 그 가운데 있는 죄를 보며
저의 목마름을 유일하게 채워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일하고 피곤하고 맛있게 먹고 배부르면 식곤증으로 부부 목장에서 졸 때가 많은데
관계의 진수인 부부 목장에서 졸지 않도록 맛있는 음식에 대한 식탐을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