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9-30
“진실로 진실로”
이 짧은 본문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이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더욱 죽이려고 했다.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신 일과 자신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돌을 든 자들을 향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자신을 폭로하신다.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인류의 법정에 판사의 이름으로 앉으셨다.
심판을 말씀하셨다. 주님은 모든 인생들이 갈망하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신다. 그리고 영생과 부활에 대해서 판결문을 낭독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일을 위한 보험이 아니라, ‘이미’ 오늘 내 삶 속에서 일어난 영생인 것이다. 이 구원은 죄를 다시 지면 구속되는 집행유예가 아니었다. 앞으로 지을 죄까지 용서된 특별사면인 것이다.
그랬다. 38된 병자가 주님의 사면령에 즉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남편 다섯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한 가련한 여인을 직접 만나러 가셨다. 그녀는 고인 물을 찾고 있었으나 주님께서는 샘솟는 생수를 주셨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즉시 전도자로 변신했다.
주님께서는 찾아온 자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니고데모를 만나셨고 그에게 복음의 진수를 말씀하셨다. 개인에게 전해지던 복음이 자신을 배척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하셨다.
절망 중에 빠진 인생에게는 다가가셨고 목말라 하던 자에게는 생수가 되셨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그의 영혼에 불을 밝히셨다.
그를 광야로 데려가셨고 모세의 놋뱀을 보여주셨다. 보는 자마다 구원을 얻은 것처럼 인자가 나무에 달려야 함을 가르치셨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서야 그는 3년 전 주님을 처음 만나던 때를 기억했을 것이다.
광야가 다시 보였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목 놓아 외쳤던 세례요한의 음성이 들려왔다.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한량없는 사랑이었다. 이것이 은혜이다. 하나님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