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9b-18
“하느냐 마느냐”
38년 된 병자는 질병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자였다. 베데스다에서 주님을 만났지만 정작 그 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누워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가면서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자신이 나았다는데 정신이 팔려 고치신 주님을 순간 잃어버렸을 것이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38년 된 병자였던 자에게 유대인들이 태클을 걸었다.
편견을 깨시길 원하셨다.
그냥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으면 하등에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굳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것은 그릇된 사고방식을 바꾸시려는 의도적인 주님의 일하심이었다.
전도를 하면서 흔히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담배와 술 문제이다.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올 당시 주초문제 축첩 도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선교사들에 의해서 술 담배를 금하였던 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굳어졌다.
사실 술 담배보다 더 심각한 죄는 거짓말하는 것, 음욕을 품는 것, 마음속으로 짓는 수많은 죄들이 더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술 담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꺼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굳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현실에 순응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찰을 줄이고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지 않느냐에 골몰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시각을 바꾸시고 싶으셨다.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셨다.
38년 동안 한 번도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던 한 영혼이 오늘 드디어 예배의 자리로 나아왔다. 성전에서 주님을 만났다. 이 극적인 만남이 바로 주님께서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이다. 오늘도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의 열심이다.
그를 향하여 육체적인 질병을 넘어 영혼을 지료하시길 원하셨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 그랬다. 주님을 영접하는 모든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이다.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제야 그의 입술이 열렸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자 그는 유대인들 향하여 걸어갔다. 그리고 고백했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요한복음 5:15
영육 간에 회복된 자의 특징은 그의 입술에서 ‘예수’를 증거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의 죄를 해결하시고 영원한 자유를 허락하신 주님을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