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9a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내가 베데스다 못의 병자였다. 60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였다. 주님을 만나고 일시적으로 기쁨에 충만한 때도 있었다. 간헐적으로 찾아온 은혜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감격이 사라진지는 꽤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기쁨은 세상에서는 그저 맛보는 정도일거라고 자위하고 살았다. 예배에 참석하고 찬양하지만 늘 설레지 않았다. 주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지만 주님은 보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듣거나 말거나 내 입술의 고백은 늘 독백처럼 내 귓가에 맴돌기만 했다.
주님께서는 생수의 강이 되신다고 했는데 주님을 만났다고는 했지만 늘 갈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감격이 사라진 예배가 나의 삶 속에 고착화되었다. 눈물이 메마르고 감사가 실종되었다.
오늘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생활을 했지만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오늘 찾아오셨다.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향해 긍휼의 말을 건네신 것처럼 똑같이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제는 구차한 변명을 거둘 때가 되었다.
베데스다에서 병을 고치려고 대기하고 있었으나 늘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희망조차 사라진 한 연약한 자를 찾으셨다.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는 행복한 명절에 처절한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올 힘조차 없는 불쌍한 자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곳을 사도 요한은 인생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죽어갈 양떼가 지나가는 ‘양문’이라고 적고 있다. 그곳에서도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다가가셨다.
자비의 집이라는 베데스다였지만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경쟁이라는 또 다른 절망이 그곳에 있었다. 소망이란 단어조차 희미해져가는 상한 갈대 같은 한 인생을 만나셨다. 꺼져가는 등불조차 끄지 않으시는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만나셨다.
축제의 현장 한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한 영혼을 향하여 나아가셨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주목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했다. 자신 앞에 베데스다이신 주님이 서계셨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지막 기대조차 잃어버린 영혼이었다.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오늘 나에게도 동일하게 명령하신다.
“길우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이 명령은 오늘도 유효하다.
모든 절망 중에 있는 인생들에게 외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