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15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9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15절)
저에게 병원 업무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습니다. 주말과 휴일을 모두 반납해야 했습니다.
(일도 많았지만 제가 일이 더딘 측면도 많았습니다.)
교수님의 호된 면책으로 자신감을 많이 잃었습니다. 직장에서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몸만 가볍게 떠나면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계산하는 빌립처럼 ‘직장 생활을 하려면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 이 만큼입니다. 대인 관계 능력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말이지요. 용량이 부족합니다! 능력이 부족합니다! 사랑이 부족합니다!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올 해만 버티고 내년에는 직장을 당장 떼려 치우겠습니다!’를 무한 반복해서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는 직장 그만 둘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를 부각시킨 안드레처럼 ‘보십시오. 제 능력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이걸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런데 목장에서의 처방은 직장을 그만 두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힘들게 붙어 있으면서 말씀을 듣다 보니 드디어 저의 죄를 보게 되었고, 깨달음과 동시에 자유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고, 일이나 관계에서 조금이나마 진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두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저에게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제가 제 손으로 직장을 그만 두었다면 저의 성향 상 크게 자신감을 잃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람들이 기적을 맛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아 왕으로 세우려고 하고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줄 왕, 로마의 정치적 압박에서 독립을 이끌어낼 왕으로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저도 이처럼 기적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나니 나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줄 왕으로 예수님을 생각하며 신앙생활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렇게 억지로 붙드는 줄 아시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저에게서 떠나가실 수밖에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적용으로 예수님을 대인 관계, 직장 생활에서 나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줄 왕으로 여겼던 것을 회개하겠습니다.
주님께 끊임없이 '다오! 다오!' 했던 태도를 버리고, 예수님이 제 인생의 주인임을 알아가는 하루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