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3-21
“니고데모2”
눈이 부시다.
모든 성경을 한마디로 줄이라고 하면 요한복음 3:16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아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구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 처음으로 하셨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말씀에 대한 편식 때문이다. 좋아하는 말씀에는 밑줄을 긋고는 앞뒤 문맥을 살피는 일을 등한시 했다. 너무 찬란해서 주위를 살피지 못했다.
거듭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주님께서 줄줄이 말씀하신다. 모든 인생의 딜레마, 죽음 앞에서 영생을 선포하셨다.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신앙의 핵심인 영생과 구원을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하심이라” 요한복음 3:17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목적은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었다. 세상이 그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셨다.
그 분의 이름대로였다. 마태복음 1:21절에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고 꿈을 통해 가르쳐주셨다. 흔하디흔한 이름 ‘예수’가 주님의 이름으로 불려지자 세상의 빛이 되었다.
모세에게 들려있던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아난 이야기가 1,400년의 세월을 지나 찬란하게 되살아났다. 골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하신다. 이 믿음의 원리가 바로 출애굽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모든 장자의 죽음이 임박한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게 바른 집은 죽음의 그림자가 넘어갔다. 유월절의 시작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던 세례요한의 외침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예수님 때문에 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은 은혜의 날이라는 것이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나에게 오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이 먼발치에서 고백했던 그 주님께서 영으로 내 몸 가운데 오셨다. 이것이 기적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