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일 화요일
요한복음 1:35-51
“와서보라”
‘이튿날’
사도요한은 사건을 기술하기에 앞서 시제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주님께서 세례요한을 만난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갈릴리로 가시다가 빌립을 만나신다. 주님의 첫 번째 사역은 사람을 세우는 일로 시작하셨다. 부르심을 받은 빌립은 곧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간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45
‘우리가’ 만났다고 했다. 어제 세례요한의 전도로 주님을 따라 나선 베드로와 안드레였다. 그리고 빌립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는 나다나엘의 냉소적인 반문 속에는 그가 성경에 능통한 자인 것과 그 역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큰둥한 나다나엘의 반응에도 빌립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와서 보라’고 했다. 그의 이런 단순한 초청에 한 인생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주님의 사역의 특징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다음날 주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갈릴리로 들어가시다가 빌립을 부르셨다. 주님께서는 모든 수식어를 버리고 명령하셨다.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에 빌립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섰다. 그의 출신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동향인 벳세다라고 하신다. 생명의 떡이 되신 주님을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복선은 ‘이튿날’이란 시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그 다음날 빌립을 만나셨다. 빌립은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을 절친인 나다나엘에게 소개함으로서 복음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주님은 지체하지 않으셨다. 즉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이튿날’이라는 단어는 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었다.
빌립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 부르시려는 많은 나다나엘을 기억나게 하신다. ‘와서 보라’는 이 단순한 한 마디가 절친들의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튿날’이라는 시제를 통해 말씀하신다. 더 이상 미루지 마라. 바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재촉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최초의 전도는 주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와서 보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전도할 줄 모른다는 많은 핑계들을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관계를 통한 전도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아는 사람들을 먼저 공략하는 전도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한 한마디
‘와서 보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이천년이 지난 오늘 내게 이루어졌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