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일 월요일
요한복음 1:19-34
“네가 누구냐?”
‘거룩한 떨림이 내게는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기다리고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를 어떠한 존재로 알고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는 주님을 신발 끈을 매는 일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소개했다. 얼마나 크신 분이기에 이처럼 고백했을까? 그의 고백이 오늘 내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너는 주님을 어떻게 알고 있니?
예상치 못한 사도요한의 기습적인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만난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거듭해서 물으셨던 그 음성이 내게 들렸기 때문이다.
네가 누구냐?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교회 관리인이고 청지기회에서 서기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밖에 없니?
재차 묻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할 수 있었다.
오늘 예루살렘에서 파송한 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들은 헤롯처럼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선한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베다니까지 사람을 보낸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사롭지 않은 차림으로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천국이 가깝다고 외쳤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그의 외침은 광야를 넘어 중앙정부가 있는 예루살렘까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광야로 몰려왔다.
이러한 군중들의 소요에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요한복음 1:20
세례요한은 그들의 물음에 그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가릴 것이 없었다. 선지자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단지 그분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 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요한복음 1:26-27
그들은 헤롯처럼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들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사람’을 소개한다. 그럼에도 바로 자신들 앞에 서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분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요한의 증언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았고 혈육이었다. 그럼에도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였다. 신발 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다는 고백 속에서 세례요한의 ‘거룩한 떨림’을 보는 것이다.
영접하기만 하면 곧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에 감사와 감격까지는 있었는데 오늘 ‘신발 끈’이라는 단어에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온 우주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가 지났다.
이튿날
예루살렘에서 파견한 정탐꾼들이 돌아간 바로 그 다음 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러 요단강으로 나아오셨다. 그때 세례요한은 한 눈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b
그는 영원의 나라에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다니엘이 힛데갈 강가에서 그토록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였다. 그분이 요단강가에서 세례요한의 눈에 나타난 것이다.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를 요단강에 서게 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일갈하던 그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었다. 예수님의 신발끈을 매는 것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님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유행가 가사처럼 알면 알수록 크신 분임을 아름답게 고백한 것이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33-34
그의 이러한 고백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보여준다. 그 역시 처음에는 주님을 알지 못했다. 성령께서 주님의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서야 예수님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슴을 열어보여 주실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손을 붙들어 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간 정탐군들은 주님을 보았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의 손에 세례를 받는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 눈에는 평범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세례요한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환호를 보낼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밝힌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복음 1:31
그는 변함없이 주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기를 자청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였다. 오늘 동일하게 주님께서 요청하신다. 내가 다시 오는 날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땅끝까지 가라고 그래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다. 가르쳐 지키는 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신다.
광야 같은 겨울이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광야 같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외로이 주님을 증거 하는, 나는 오늘 세례요한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