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구원하지 못하시더라”
작성자명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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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12.28
요한계시록 16:10-21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구원하지 못하시더라”
다섯째 천사가 용으로부터 권세를 이양 받은 짐승의 보좌에 대접을 쏟았다.
어둠이 내렸다.
애굽에 내려졌던 그 어둠이었다. 태양신을 섬겼던 애굽인들에게 참신이신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그럼에도 완악한 바로는 회개하지 않았다. 동일했다. 계속되는 패배에도 그들은 다시 세력을 모으고 대항을 멈추지 않았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열 번의 재앙까지 저항했던 바로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자신이 바로와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선하게 살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아킬레스건처럼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인생들의 일탈은 너무도 자주 이 땅이 등장한다. 온 나라를 극심한 혼란으로 내몬 최순실 게이트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가 벌인 국정농단의 핵심은 대통령의 비선실세였다는 것과 함께 재벌들과 결탁하여 더 많은 부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재산이 이미 수백억이라는 뉴스를 접하면서 인간의 욕심의 끝없음을 보게 된다.
바로가 이스라엘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도 경제였다. 값싼 노동력의 상실이 가져올 경제적 파장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더 가지기 위해서 벌이는 수많은 전쟁과 그에 따른 피난민들, 기근과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들의 아픔과 슬픔이 연일 뉴스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먹거리가 부족해서 굶는 것이 아니라 나눔의 불균형이 가져온 참사라는 것이 더 큰 아픔이다.
입으로는 평화를 이야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군사력 증강에 여념이 없는 현실이 바로 어둠이라고 하겠다.
합법을 가장한 부의 세습은 세상을 잘 사는 자와 못 사는 자로 편을 가르고, 이처럼 편중된 부로 인해서 전 세계에 그늘이 거치질 않고 있다.
다섯째 대접이 쏟아지자 어둠과 함께 극심한 고통이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성전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소리에 대항하여 혀를 깨물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들의 혀는 하나님을 비방하는데 사용했다. 이것이 비극이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쏟자 강물이 말랐다. 그 강바닥에 아스팔트가 깔렸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되었다. 극심한 고통과 기근 속에서도 저들을 끊임없이 군비증강에 혈안이 되었다. 악의 축이 형성되고 연합군을 결성한다.
그러나 실상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영이었다. 헛것에 사로잡힌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인류의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이었다. 저들은 끝까지 허상을 놓지 못했다. 실상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죽음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일곱째 천사가 공중에 대접을 부었다. 우주적인 재앙이었다. 땅이 갈라졌다. 성들이 무너지고 하늘에서 우박이 내렸다. 50kg이나 나가는 얼음 덩어리들이 지구를 강타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엄청난 재난이었다.
제2의 애굽 사태였다.
개구리와 피로 변한 강과 바다, 그리고 기근의 땅에 우박이 내리고 땅이 갈라졌다. 그러나 최후의 죽음 앞에서도 돌이키지 않았던 바로처럼 저들 역시 엄청난 재앙 앞에서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중국의 임어당이 인생론에서 휴머니즘을 논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어머니의 사랑 반만 가지고 있으셔도 절대로 지옥에 보낼 수가 없으실 것이라며 외쳤던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사랑의 손을 내밀어도 이처럼 냉혹하게 뿌리친다면 더 이상의 구원을 논할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불가능이 있으시다. 회개하지 않는 인생을 구원하실 수 없으시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6:15
우박이 내리는 하늘을 보라 ‘고센’의 하늘이 열린 것이 보이는 자는 복되다.
열린 하늘 길을 걸어 간다.
좁은 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