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믿음과 인내
작성자명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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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12.25
요한계시록 13:1-10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요한복음 12:17
공중전에서 패한 ‘붉은 용’은 바다 모래 위에 섰다.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땅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자의 남은 자손과 더불어 싸우려고 전열을 정비하였다. 바로 그곳에서 두 짐승이 출현한다.
하나님의 어린 양처럼 짐승 역시 용을 통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공급 받았다. 적그리스도였다. 그들은 세상을 압도할만한 포스를 가지고 있었고 온 땅이 짐승을 따르게 된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신성모독이었다.
용과 짐승은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서로 권세를 공유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성도들을 박해하고 온 세계를 자신의 수중에 넣는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다. 짐승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권세로 온 나라들을 다스린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의 경배를 받는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요한계시록 13:3
온 천하를 꾀는 자였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의 본색을 명확히 드러낸 장면이다. 거반 죽은 것처럼 위장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꾸몄다. 세상은 이러한 짐승의 트릭에 넘어가 그를 따르고 칭송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짐승의 이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패러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아니라 바로 믿음을 지키고 인내한 성도들이다. 짐승의 스펙터클한 형상에 눌려 지리멸렬 당하는 듯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인공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도요한은 온통 바다로 둘러 쌓인 밧모 섬에서 일차 독자였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바라보았다. 로마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초라한 교회였다. 변변한 건물조차 없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였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큰 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를 창세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13:8-9
짐승을 따르는 자들과 하나님만 경배하는 자들로 나누신다. 넓은 문과 좁은 문이다. 알곡과 가라지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에 있다. 귀를 열면 들리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이다.
아무리 시국이 어순선하고 정의가 땅에 짓밟히는 것 같아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곳에 진정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갈래 길에서 머뭇거리지 말자.
좁은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