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14-19
“천상에서 들려온 승리의 노래”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요한계시록 11:15
천상에서 부르는 ‘메시야’였다.
두 감람나무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이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다. 둘째 화가 지나간 후, 참혹한 세상을 향해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의 찬양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의 포연이 자욱한 땅을 향하여 울려 퍼지는 승리의 함성이었다. 진심을 담아 토해내는 ‘큰 노래’였다.
그들의 노래의 시작은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을 천명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대면했던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밝히셨던 것처럼 옛적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신 하나님이심을 노래했다. 스물네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얼굴을 땅에 댔다. 그들의 노래의 정점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세세토록 계시는 분께서 영원한 심판을 선포하신다. 오랜 시간 세상을 유린했던 사탄의 멸망의 날이 다가온 것이다.
찬양소리와 함께 천상의 커튼이 걷혔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이스라엘 백성과 삶의 질곡을 함께 했던 언약궤가 보였다. 588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가 망하면서 분실되었던 언약궤였다. 이스라엘과 운명을 함께했던 언약궤가 성전으로 옮겨져 있었다.
사십년 광야학교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님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백성임을 배웠던 ‘만나’였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서명이 기록된 십계명 두 돌 판이 그 안에 담겨져 있었다. 언약의 보증이었다.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담긴 법궤였다.
만나는 생명의 떡 이신 주님이었다.
두 돌판은 ‘로고스’이신 주님이었다.
지팡이는 십자가가 새겨진 부활의 주님이었다.
언약궤가 그곳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외면하며 세상을 향하여 걸어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잊지 않고 간직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장 속에 좌정하신다.
그랬다.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문을 두드리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후서 3:3
바울의 고백,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셨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4-16
천년의 사랑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두 돌판이 아니라 하나님 손바닥에 나를 새기셨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판에 쓰셨다.
사랑의 절정,
‘임마누엘’
이 한 단어에 온 우주를 망라한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이 담겨져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부르는 노래이다.
앞으로 우리가 불러야할 영원한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