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15-31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21절)
요즘 내가 명철의 길을 떠나 사망의 회중에 거하도록 나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치료사들은 환자를 정말 최선을 다해 정성껏 치료했는데 환자가 크게 호전이 되고 이를 환자가 알아주며 함께 기뻐하고 감사의 표시로 주시는 선물에 대해서는 매우 보람 있고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뇌물의 차원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선물이 때로는 인정 중독으로 가는 족쇄가 되어 환자를 돌보는 순수한 치료사의 마음이 변질이 되게 하기도 합니다. 김영란 법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병원 내에서 모든 선물이 금지되었습니다.
치료사들은 선물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으니 모든 인정 중독에서는 자유롭게 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환자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치료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치료사들은 김영란 법 시행 이전만큼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변함없는 모습과 정성으로, 선물과 상관없이, 환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며 환자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는 치료사들이 있으니 당연 그러한 치료사들은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인정 중독에서 자유로운 이 구조가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선물과 상관없이 이전보다 더 잘하리라’ 다짐하며 열심히 노력하였고, 치료할 때 가장 자신있고 제 치료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저이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발견하게 됩니다. 선물과 상관없이 최선을 다 하는 여느 치료사와 제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포인트는 포커스가 환자이냐 치료사이냐 하는 것인데 전자는 이타적인 관점에서 순전히 환자의 호전을 목표로 하며 치료할 때를 말하고, 후자는 환자의 호전을 통해 치료사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치료할 때를 말합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환자 차별입니다.
한 환자가 아무래도 수술을 잘못되어서 통증이 유발된 것 같다면서 무척 까칠하게 반응하십니다. 병원에 대해 이런 저런 불만을 쏟아낼 뿐 아니라 자기 부인에게도 불친절하십니다. 이 분에 대한 첫 인상은 고리타분하였고 자기만의 규칙이 있어 그 규칙으로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며 질문에만 답하면서 묵묵히 치료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이 환자의 치료 지원을 나온 여자 후배는 이 분에게 ‘선입견 없이’ 살갑게 다가가며 치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후배의 모습이 참 귀엽고 따뜻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하십니다(21절).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그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봄으로써 거룩함을 지키며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하여 승리한다고 하십니다.
저는 모든 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일에서 공의를 생각하고 인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을지 모르나 동기가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들에게서 겸손을 배웁니다. 이 영역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달인들의 특징은 자기가 잘해 놓고서도 자기가 잘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칭찬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생각이 단순해서 오로지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며 우쭐해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되 생색내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갑니다. 사랑스런 후배들에게 이런 모습들을 잘 배워야겠습니다.
적용으로 치료할 때, 다른 업무를 할 때에도 제가 자주 놓치던 두 가지 ‘공의와 인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