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의 맛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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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2.16
한 달전인가
정 아 집사님이
친정 어머님께서 매우 아프시다며 기도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할 수만 있거든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는
말씀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함께 해주시는
주님께 오십평생 주님을 믿었지만
그간 한번도 갈망해보지 않았던 당신의 권세에 대하여
심히 알기 원한다는 소원도 아뢰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주님의 권세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는 것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권세가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지
맛을 본 자는 그 권세의 맛으로부터 자유하기가 무척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권세에 대하여
아예 알려하지도 않은 부정적인 성향이 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허나 이젠 과감히 주님의 권세가 어떠한 것인지
맛보아 앎으로 짐승의 권세를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큐티를 하다보면
그 날 그 날 주시는
말씀이 의도하는대로
그 말씀의 영이 흐르는대로
내 영도 흘러 떠내려가도록 전적으로
내 영을 내 뜻으로부터 내주어야만합니다
특히 오늘같은 본문은
내 영을 내 뜻으로부터 온전히 내주어
말씀의 영이 흐르는대로 흘러가도록 자아를 포기한다는게 쉽지 않습니다
자아라는 것은
즐겁고 기쁜 순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섭고 두려운 순간에도 살고 싶어하고
죽도록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죽고싶다고 하면서도 살고 싶다지요
그런 자아이기에 말씀앞에서조차
말씀을 밀쳐내고 내 뜻을 세우기에 급급합니다
그런 내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는 의식하지못했던 짐승의 권세에 대하여
묵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내가 인간이라면
참으로 내가 그렇게 피조물된 인간이라면
어찌 신이신 말씀앞에서
어찌 창조주이신 말씀앞에서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내 뜻을 세우기에 급급한 것인가?
내가 짐승이니 그렇지 않은가 싶어서이지요
내 속에 짐승의 권세가 용트림하니 그렇겠지요
다시는 너와 딩굴지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또 다시
짐승과 함께 딩굴며 사는 나도 나를 다 알지못하는 세계가
아직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오늘 주어진 13장 말씀앞에서 고백하는 바입니다
제 13 장
짐승 두 마리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1)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내 이름 석자가
생명책에서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하게 기록되어질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는 것이기에
나는 날마다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짐승이 내속에서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그 참람함이 과연 어느정도일까 상상이가고도 남습니다
내 입에 파숫꾼을 세워주시지 않는다면 열뿔에 일곱 머리의 권세를
힘입은 짐승의 달변앞에 현혹되기도 하고 또한 내가 일곱 머리의 논리정연한
짐승에게 이용될 수도 있는
이 엄청난 영계의 교란작전을 나는 진정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현란한
지식의 구조적인 그물망에 잡혀 짐승의 도구로 쓰임받다
사라졌는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특히 말과 언어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가는 철학자나 사상가나 소설가나 시인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언어들의 강력한 마력이 그들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 이해가 잘 갑니다
아직도 내속엔 죽어야 할
아름다운 시어들이나 문장들을 죽이지못해
음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고나있지는 않은지 섬뜻 섬뜻해져옵니다
아름다운 구문이나 논리정연한 이론이나 그외 현란한 말로도
말씀이 죽어지지 않을 때 짐승의 권세가 또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의 푹력입니다
참람한 언어
모욕과 온갖 거짓과 수치의 언어
그 언어의 권세가 어느정도이냐면
말씀을 죽이는 권세까지 있습니다(물론 말씀은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짐승의 언어들이
말씀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했습니다
여기에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주께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이다보면
짐승의 권세에 의해 순교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렇게 참다보면 마흔두달간의 한정된 기한만을
허락받은 짐승의 권세가 끝나 지상에서 승리의 날을 볼 수 있다는 것
이리 묵상하다보니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풀리지 않던 내 영혼의 숙제가 풀리는
깊고 깊은 겨울 밤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권세는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주기까지
자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권세라는 것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