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두드리노니
작성자명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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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12.14
요한계시록 3:14-22
“ 서서 두드리노니”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온적인 태도였다. 경기장의 선수가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직무유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신들을 평가하기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곤고한 자들이었다. 가련하고 가난했다. 더 큰 문제는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조차 알지를 못했다. 이것이 비극이다.
사데교회와 별다를 바 없는 교회였다. 이도저도 아닌 그들의 신앙생활에도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니 포기할 수 없으셨다. 자신을 외면하고 문을 닫아 걸어놓은 그들을 향해 목청을 높이셨다.
전능하신 분이시다. 인간이 만든 어떠한 문이라도 들어가실 수 있으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단지 밖에서 두드리실 뿐이다. 주님께서는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 말씀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영상이 있다.
삭개오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매국노였다. 세무소장이었던 그는 동족을 착취해 피를 빨던 자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성했지만 그의 마음은 빈곤에 시달렸다.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의 빈자리가 항상 그에게는 딜레마였다. 그때 자기 동네로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달려갔다. 누가는 그를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세무서장이란 체면과 키가 작은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야했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계신 예수를 보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다. 그때 일면식도 없었던 예수께서 그를 쳐다보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는 이 한마디에 그는 급히 내려왔다. 머뭇거리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순종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그는 율법을 알고 있었다.
토색한 것을 네 배로 갚게 한 모세의 계명을 알고 있었지만 실천할 수 없었다. 주님께서 단지 그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유턴하겠다고 선언한다.
주님은 앉으셨고 그는 서서 주님의 시중을 들고 있다. 주인의 자리를 기꺼이 예수님께 내어드렸다. 이것이 영접의 원리이다.
비단 라오디게아 교회뿐이겠는가. 오늘도 쓰나미처럼 쓸려가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불신자들을 보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 미온적인 태도로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는 나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그리고 나를 통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라고 명령하셨다. 내가 할 일은 단지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하신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를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인 치신다.
나의 주인이 되신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것이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