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6과 7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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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2.16
2008-12-16(화) 요한계시록 13:11-18 ‘내 마음의 6과 7’
세상에 넘쳐나는 선지자와 예언자
그리고 주석가들이 오히려 묵상을 방해합니다.
거기에 세상의 속설들까지, 한 결 같이 그럴듯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666번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그게 적그리스도의 음모라는 겁니다.
사당(동)과 (망우리)공동묘지를 오가는 게 그 근거라나 뭐라나...
나란히 있는 6과 7의 성경적 의미는
정확히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짐승의 수, 하나는 하늘의 수...
내 마음에도 6과 7이 있습니다.
짐승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마음을 오갑니다.
그게 다 먹고 살 만하고, 기댈 데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환경으로 전락하여
사거나 팔지도 못하는, 꽉 막힌 상태가 되었을 때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집니다.
먹고 살기 위해, 성령의 처소를 짐승의 이름으로 더럽힐지
죽으면 죽으리라의 결단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될지...
‘있을 때 잘해’ 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아내가 있을 때 아내에게 잘 하라는 게 그 가사의 주제인데
그 가사를 통해
말씀이 있을 때,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사거나 팔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지금을
최고의 환경으로 생각하여 늘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
삶에 적용할 수 있다면
말초 신경이나 자극하는 세속적인 것이라고
세상의 경건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폄하하는 세상의 유행가도
거룩으로 가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세속과 경건은 유행가 가사의 행간에 존재하고
6과 7의 사이에 내가 있음을 봅니다.
나 하나로 우리 가족의 숫자가 결정되고
우리 공동체의 숫자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소중한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은 성령의 처소를 마련하셨나 봅니다.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늘 당신께 향하도록 하기 위해
연약한 그 마음에 강건함을 주시기 위해...
그러나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실 뿐
대신하지는 않으심을 압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제로
성경을 교과서로 삼아
스승의 자리에 성령을 모시고 7을 향해 가야 합니다.
내 마음의 6과 7
그 가깝고도 먼 거리를
한 결 같이 동행하시기를 기쁨으로 여기시는
성령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