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9:1-14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1절).
물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만 복귀 후 생각보다 기본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적응을 빨리 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물론 제 수준에서 말입니다. 전 다른 사람보다 항상 느립니다).
그런데 또 다시 업무 조정이 있었고,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엄청 바빠지겠구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압박감이 느껴졌고 업무를 끝내고 빨리 집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동기는 퇴근하지 않고 후배들과 탈의실 청소를 하고 있고, 후배는 제가 휴직 때 인수인계해 주었던 복잡한 사안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 그 일을 놓고 실장님과 토의 중에 있었습니다.
둘 다 제가 관여할 수 있었지만 저는 둘 다 관여하기 싫었습니다. 그저 퇴근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는 일을 마치고 탈의실 청소까지 할 여력이 없었고, 예전에 제가 하던 어렵고 복잡한 사안에 또 다시 연결되기 싫었습니다. 또 두 분께 신세를 지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느낌 아닌데, 난 구원을 위해 살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저 퇴근만 하고 싶구나!’ 복직하면 좀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업무가 과해지니 다시 압박감에 시달리며 일 처리에 목을 매는 제가 있었고, ‘내 가족’ 오직 딸아이만 생각하는 제가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사람 중심적이지 않고 공동체 중심적이지 못하다는 것으로 인한 죄책감에 빠져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복직하면서 저의 최대 고민은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관계적인 적용을 한다고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오래 앉아 있다거나 부자연스럽게 아는 척을 하거나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갈팡질팡, 안절부절 하지 못했습니다.
부부 목장에서는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집착을 버리라고 처방하셨습니다. 난 여기까지 밖에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가 낫다고 하십니다(1절).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자기 주제를 아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이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가정과 주변 환경, 자신이 받고 있는 대우가 어떠한지 판단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시 제가 승진 라인이 아닌 것으로 인해 받는 대우와 편견이 싫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억지스러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안에 구원을 위한 선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너무 미안해하면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이런 나의 모습을 들킬까봐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일마치고 탈의실을 청소할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하다. 못 도와주는 것으로 괴로워하지 말자. 일 잘 하는 후배가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괜히 그 일을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관심이 있는 척 하지 말자.’
모든 사람이 저의 이러한 이기심과 부족함을 알게 되더라도 직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고 어색하게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실장님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언장담하지 않고 솔직하게 ‘제가 적응 속도가 느리거든요.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절친 두 분께 나의 이런 마음을 들켜도 괜찮다. 나는 아직은 그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제 자신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며 괴로워할 시간에
대신 내게 맡겨진 일은 잘 하리라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적용으로 동기와 후배처럼 대단하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슈퍼 우먼이 아님을 인정하고 제가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