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2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계시록 1:9
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했을 때, 그는 밧모섬에 유배당해 있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무겁게 언급했다. 이어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너희 형제라고 지칭했다.
그동안 사도요한은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이천년의 시간을 초월해 핏줄이 땡겨 온다. 나를 형제로 불렀다.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임을 선언한 것이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 1:10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날을 명시했다. ‘주님의 날’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안식일을 지켜왔던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부활한 날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안식일 즉, 새로운 창조의 날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주일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요한계시록 1:19
고난 중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할 것을 주문하셨다.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였다.
그분이었다.
세상의 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모습이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영원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주님의 큰 음성에 뒤를 돌아보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위엄 앞에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같이 된 요한의 어깨에 오른손을 얹으셨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계시록 1:17
요한계시록 1장에 무려 세 번이나 처음과 마지막 되심을 반복하여 증거 하셨다. 내일 일을 모르는 암담한 현실 속에 살아갔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셨다.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임을 말씀하신다. 세상은 현실에 안주하라고 외친다.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말씀 앞에서 지난날을 추억했다.
지리산 피아골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교회당이었다. 한국밀알선교단 수련회였다. 그루터기선교회 조성범 목사께서 요한복음 1:12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게 했다.
“영접하는 길우 곧 그 이름을 믿는 길우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나는 이 자리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고개를 든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왔다. ‘새들이 울었다고 쓰고 새들이 노래했다’고 읽었다.
오늘을 돌아본다.
교회 관리인으로 27년째 섬겨왔다. 매일 드리는 새벽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주일예배 성경공부 등 멈출 수 없었던 주님과의 만남이었다.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갔을까? 그러나 나의 신앙의 현주소는 언제나 되돌이표이다.
주님께 드린 것은 너무도 적고 받은 것만 훈장처럼 내 삶에 넘쳐난다.
내일을 기대해본다.
그렇다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일까? 기대감은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주일에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선언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되어 질 미래의 이야기 안에 오늘을 살아갈 지침으로 가득한 책이다. 말씀 앞에 선다. 책망의 말씀은 아직 기회의 시간임을 기억한다. 겸허한 자세로 신앙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