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7년은 안식년으로 7년을 7번 49년 다음 해는 희년으로 어디에 있던지 자유를 얻어 자기 소유지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지 40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철저한 운동과 자기관리로 잘 견뎌오셨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 교회를 나가셨으니 오랜 시간동안 믿음으로 항상 자식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3년전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주재하고 있을때 저희 집에 오셔서 차를 타고 근교 관광지를 하루종일 다니셔도 끄떡없을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아내가 자기보다 체력이 좄으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최근에 당뇨합병증이 눈과 발로 왔습니다. 한쪽 눈은 거의 안보이고 다른 쪽도 백내장 수술을 해서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입니다. 발가락에 상처가 작게 났는데 잘 아물지 않고 뻘겋게 되었다가 검붉은 빛을 띄고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도 상황이 안좋아 보입니다. 저번주에 근처 대학병원에 입원하셔서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으셨고, 발가락 상처가 심각하다고 해서 어제 혈관시술을 받으셨는데 혈관이 너무 약해서 발가락 세곳을 통하게 해야 하는데 한 곳밖에 못했다고 의사선생님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너무 많은 약을 먹다보니 신장기능도 많이 약해지셨다고 합니다. 어제 밤에 퇴근하고 병실을 가서 너무나 약해져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인정하기가 싫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골에서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홀어머니 밑에서 학교도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셨지만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당당하시고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으시는 분, 친척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유머로 리더의 역할을 멋지게 하셨던 분입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전신전화국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아버지 군대 후임병이 아버지와 같이 근무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제게도 아버지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잘 모시라고 얘기도 해주시기도 하고 두분이 정말 사이좋게 지내셨는데 다음 달 진급에서 이분이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 상사로 진급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리를 기대하고 계셨고 다른 분들도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력의 벽이 아버지의 희망을 무참하게 뭉개버렸습니다. 충격과 상처를 받으셨을텐데도 훌훌 털어버리시고 그분과 관계를 잘 유지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저는 너무 존경스러웠고 항상 그렇게 계실줄 알았는데 지금의 아버지는 너무나 약해지신 모습으로 좁은 병실 좁은 침대에 누워계십니다.
어제 아내가 하루종일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교회를 거의 나가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지금부터 천국의 소망을 드리자고 얘기해 주었습니다.저는 아버지의 모습만 보고 마음만 아파했지 아버지의 진정한 구원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내는 벌써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믿음이 아내보다 좋다고 생색내며 한 교만했었는데 아내는 모태신앙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뵈러 갈때마다 큐티인에 있는 지체들의 간증을 들려드리고 육체의 고통을 천국 소망으로 마음의 안식을 누리시도록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적용하기)
1. 아버지와 어머니께 우리들교회 간증을 들려드리겠습니다.
2. 믿지 않는 남동생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