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 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등잔불을 꺼지지 않게 켜 두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에떡 열두 개를 구워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 하십니다.
오늘 수능시험일 입니다. 새벽큐티 말씀 중에 목사님이 수능시험보던 중 잠이 들어 시험을 망치고 한 문제 차이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열등감으로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많이 공감이 갑니다. 저도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학력고사(수능고시 전) 1세대로 그전에는 예비고사를 치르고 본고사를 다시 치뤘습니다. 당연히 본고사에 더 치중을 하던 때였죠. 학력고사 6개월을 앞두고 예비고사,본고사가 없어지고 한번 시험으로 결정이 되는것으로 바뀌는 어수선한 때였습니다. 아침에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하도 긴장을 하니 어머니가 청심환을주셔서 먹고 들어갔습니다. 1교시는 잘 치렀는데 2교시가시작됨과 동시에 소변기가 있더니 10분 정도 지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워낙 중요한 시험이라 참으려 했는데 통제불능의 상태까지 와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문제를 찍고 화장실을 가야했습니다. 3,4교시 시험은 그 여파로 제대로 시험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은 망쳐버렸습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친구들과 롤라스케이트장에 가서 놀다가 안경을 깨뜨렸고, 집에와서 꾸짖는 어머니 앞에서 억울한 마음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아버지가 전신전화국(KT)을 다니셨는데 민영화가 되기 전이라 박봉에 저를 포함해 세 아이를 공부시키는 것만으로도 힘드셨을테고, 저를 서울로 대학을 보내기에는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에 시험을 잘 봤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어렸었기에 집안 사정보다도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가질 못한다는 사실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친했던 친구들도 서울로 간 친구들은 일부로 회피했습니다. 청주로대학교를 갔는데 그곳에 청주 이모가 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모부는 경찰서에 다니고 계셨고 그 분 역시 박봉에 17평 주공아파트에 5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방이 2개라 한 방은 이모 내외분과 여동생이, 또 한 방은 저와 두 남동생이썼습니다. 다들 불편했지만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여동생이제일 힘들어했습니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제 방도 없이 좁은 곳에서 매일을 북적북적 보내야 했던 것이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그 곳으로 저를 보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집안사정이 많이 안 좋았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처음 해보는 대학생활, 하지만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열등감으로술로, 당구로, 음란으로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 들어가니 이모네 식구들이 불편이 말할 수 없었을텐데도
이모부와 이모는 한마디로 질책을 안 하시고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때는친척이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분께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제게도 조카가 여러 명이 있는데 이번에 수능시험을 두 명이 봅니다. 만일서울로 온다면 제가 데리고 있겠다고 말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우리 애들만으로도 얼마나 힘든데 아무리조카라지만 남의 자녀를 데리고 있기가 생각만 해도 겁이 납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두 분께 제대로 보답도 못해 드렸고 사촌 동생들 결혼할 때 남들보다 조금더 축의금으로 드렸을 뿐인데 두 분은 그걸로도 너무 고마워 하셨습니다.
이런 학교 열등감은 서울의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도 계속 되었는데 SKY를비롯해 인서울 대학끼리 모이고 챙겨주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제대로 된 선후배가 없다는 사실에 위축이 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 열등감이 대기업에서 26년을 근무하면서 계속 발목을 잡았던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은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 지방이라서 학연 지연에 쏠리는 현상이 덜하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몸과 마음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환경이 모두 다 하나님의 주권이고 샛팅이심이 느껴집니다. 이런열등감이 없었다면 대기업에 들어가서 편한 환경에서 모든 게 제가 잘나서 이룬 것이라고 한 교만을 가지고 생활 했을텐데, 이런 환경을 주셔서 제 안의 교만을 보게 하시고 낮아지는 훈련을 하게 해 주십니다.
오늘 대학생활을 돌아보면서 이모부와 이모님께 마음에 큰 빚을 지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받은 그대로 돌려주라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죄성으로 받은 것 이상 더 크게 되갚으려는 악한 마음을 경계하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원수에게도 이렇게 할진대 저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카라고 챙겨주고어려운 생활을 기꺼이 감수해 주신 두 분에게 제대로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모부님은 대학생이라고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워 많이 각을 세우고 버릇없이 대들 때도 허허 웃으시며 받아주셨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두 분께 지은 마음의 빚을 항상 생각하고 저도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혈기를 부리지 않고 하나님이 제게 형용할 수 없을만큼 부어주신 사랑을 생각하고 그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적용하기)
1. 혈기가 올라올 때 옛날 이모부님처럼 허허 하고 웃을 수있도록 말씀으로 마음을 잘 단련하겠습니다.
2. 이모 내외분께 안부인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