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3:26-44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42-43절)
내게는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한 간증이 있습니까?
2015년 당시 저는 소아 치료실에서 성인 치료실로 부서를 이동하였습니다. 소아 치료는 환아 치료, 보호자 교육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성인 치료는 달랐습니다.
성인 환자를 대하기에 어른들을 예의를 갖추되 편안하게 대해드리는 것이 중요했고, 상식이 풍부해서 여러가지 주제의 대화가 가능하면 좋았고, 환자의 기분도 잘 파악하며 센스있게 반응을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결핍과 소통 불능의 부부 문제, 그리고 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감 결여 등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문제들로 환자들과의 관계적인 부분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했고, 아침이 되면 오늘은 또 무슨 말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갈까 고민하며 갈팡질팡 하였습니다. 치료 시간 50분이었는데, 치료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당시 저는 신경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주말에는 격주로 출근하고 있었고, 밀린 일도 해야하고 아이랑 있는 시간도 부족했기에 도무지 시간을 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정서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를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책이 어려우면 금방 포기할 것 같아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고전을 질로 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 두고 독서실에 가서 한 두 시간 정도 환자 치료를 준비하고, 기사를 스크랩하며, 환자들과 나눌 말을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기질이 예민한 아이는 제가 갔다 오고 나면 떼를 심하게 부리며 더욱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갈등도 극에 치달았습니다. 업무가 많아지자 사 놓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읽지도 않을 책을, 그것도 질로, 그것도 초등학생 수준의 것으로 샀다며 저에게 수치심을 주며 비난하였습니다. 너무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제가 성인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여나 정신 줄을 놓지 않을까 매우 불안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버거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저에게 물과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광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밖에 없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면 저에게는 개인적인 시간이 40-50분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죽지 않고 살기 위해 큐티를 했습니다. 그래도 큐티를 하고 나면 잠깐 동안 영적으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상태였는데 긴장을 많이 했고, 적응하는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환자 수가 급감했고, 각 치료사는 휴가를 최대한 쓰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돌아가면서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논문이며 직무 교육이며 스터디며 엄청 빡세게 돌아가던 상황이었는데, 모두 중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적으로도 잠깐 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었고, 다시 예전의 흐름대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정서적으로 불안한 저였지만 날마다 말씀보며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치료 전 할 말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반응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인격이 훌륭해서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환자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저의 입에서도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대화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꼭 최근 이슈가 아니어도 사소한 것들이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말씀을 깊이 보며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일하고 나면 에너지가 방전되어 시간이 남아도 무기력 가운데 집은 난장판이 되어갔습니다. 영혼 없이 반응하며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일과였습니다.
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하나님께 구했더니 광야 같은 저의 인생에 '육아휴직'이라는 물과 맛나와 메추라기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육아휴직을 통해 저는 하루에 2-3시간씩 말씀을 묵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공 관련 공부도 3시간 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휴직 전에는 보통 30-40분 정도 말씀을 보았고 공부는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5-6년 정도에 걸쳐 볼 말씀 묵상과 공부를 이 기간에 다 한 셈이었습니다. 저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초막절이 나옵니다(42-43절). 자신의 광야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로 삼는 것은 "하나님 없인 살 수 없다"는 개인의 신앙고백이 된다고 하십니다.
저도 2015년의 메르스를 잊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메르스 때문에 덕을 본 사람이 저여서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하지만 메르스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저의 광야 시절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텐데 제가 다시 직장에 복귀하면 또 잊을지도 모릅니다.

적용으로 '하나님 없인 살 수 없다'가 저의 신앙 고백이 되도록 오늘 큐티 본문 묵상 내용을 일년에 한 번 읽으며 그 때 그 시절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