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3)
포카라에서는 보트를 타고 관광을 하였는데 네 명이 탔는데 내가 제일 무거워서 살짝 비켰더니만 금방 넘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앙으로 자리를 잡았더니 균형이 잡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 기도, 전도 등을 골고루 잘하여야 합니다, 신앙과 세상적인 일에서도 조화롭게 잘 해나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 균형이 잡혀야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4시에 일어나 희말라야 산을 관광하기 위하여 전등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써 내 발을 비추어 주시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봉우리를 거의 다 올라가 전망대에 이르자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산붕우리가 서서히 붉게 물들이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탄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총길이 2,400km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梵語)의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2개 낱말이 결합된 복합어이다. 처음에는 갠지스강(江) 연변의 수원(水源)지대를 가리키는 좁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넓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히말라야산맥은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활 모양을 그리며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네팔·시킴·부탄·티베트 남부를 뻗어 내리면서 몇 갈래의 산계로 나누어진다.
맨 앞쪽의 힌두스탄 평원에 면하면서 비교적 낮은 시왈리크산맥과 그 뒤쪽에 있는 소(小)히말라야산맥, 산맥의 주축에 해당하는 대(大)히말라야산맥의 3개의 산계로 나눌 수 있다. 대히말라야산맥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최고봉이 솟아 있으나, 줄곧 연속되지는 않고 거대한 산괴를 이루면서 군데군데 깊은 계곡으로 단절되어 있다. 이 가운데 카라코람산맥을 히말라야산맥과 구분하여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함께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말라야산맥은 ‘눈의 거처’라는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다.
네팔에는 8,000미터 이상 산이 14곳이나 있습니다, 거기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르 산 등이 넓게 깔려서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내가 비록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흰 눈처럼 맑게 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으니 내가 담대히(뻔뻔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포카라를 떠나려고 차를 타려고 하는데 자매가 반지를 놓고 왔다고 하여 찾아보았지만 금방 팀으로 노은 달러를 가져가 버리고 사람들이 방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매가 주님! 반지를 찾게 해 주셔요? 라고 짤막한 기도를 하였지만 반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잊어버리지나 말지 웬 기도를 하면서 의아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를 막 타려고 하니까 지배인이 다가 오더니 반지를 찾았다면서 주는 것입니다.(이런걸 기도응답?) 주님은 화살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마지막 날 커트만두에 들러서 선교사님의 안내로 쇼핑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가 장애인들과 고아들을 고용하여 공예품 가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장애인들과 고아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힘든 여건 속에서 일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물건들을 샀습니다, 또 쇼올가게에 들러 가지각색의 쇼올들을 선물로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 구청장님이 부탁하신 말을 사려고 보니 앞 가게에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얼른 적당한 가격을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힌두교 사원을 관광하였습니다, 힌두교는 브라만교에서 많은 신관(神觀)·신화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다신교 같아 보이지만, 신들의 배후에 유일한 최고신을 설정하고 그 신들을 최고신의 현현(顯現)으로 통일시키고 있는 점에서 일신교적 형태를 취한다. 《푸라나》 문헌 등에 나타나는 트리무르티(삼신일체(三神一體), 또는 삼위일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별도의 기원에 속하는 우주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維持神) 비슈누, 파괴신 시바의 세 신을 일체로 하여 최고의 실재원리로 삼는 것이다.
그 중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힌두교의 대종파를 형성하였다. 비슈누파는 학문적 성격이 강하며, 비교적 사회의 상층부에 속한다. 비슈누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으로 지상에 출현하는 것으로 신앙되고, 비슈누의 10권화(權化) 중의 라마와 크리슈나는 2대 서사시의 영웅이다. 시바파는 수행자의 고행·주술, 열광적인 제의(祭儀)가 특색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예부터 신비(神妃) 숭배가 성하여 브라흐마에게는 사라스바티, 비슈누에게는 락슈미가 배우 여신으로 간주되며, 시바신의 배우 여신으로는 두르가·파르바티·우마·칼리 등 많은 이명이 있다. 이들 여신을 샤크티(여성적 창조력)라고 하며, 이들을 숭배하는 샤크티파도 있다.
갠지즈 강 상류에서 시체들을 6구를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우기 전에 물 가까이에 내려놓고 성수를 바르는 것 같았고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상주로 보이는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시체를 태우는 캐캐한 냄새가 코를 진동하였고 속이 매스꺼웠습니다.
힌두 사원에서는 남녀 성기의 형상을 닮은 조각을 하여 몸은 인간이며 머리는 코끼리인 희한한 동물도 있었고 남녀가 혼합으로 색스를 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등 온갖 잡신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사제들이었는데 3명이 사원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면 포즈를 취해 주면서 한명은 사진을 찍는 사람마다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참으로 사제가 돈을 파는 모습이 우습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원 전체에 개와 원숭이들이 널리 깔려 있으며 그것들이 싼 똥이 여기저기에 깔려있는 한마디로 개판이었습니다. 이것이 잘 나타난 곳이 전선줄이었는데 한 이백 개 정도가 다닥다닥 엉겨 붙어있어서 지탱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가 너무나 세속화되어서 저 정도라면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시며 구원이십니다.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래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래요>
네팔을 다닐 때마다 차량들이 좁은 도로를 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대로 평안히 다니고 있었음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의 다른 행동들도 달리 보며는 문제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형제님이 여행 도중에 이런 저런 지적을 가금씩 하였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기질적으로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추진하는 정형제님에 비해 저는 선천적으로 낙천적이며 개방형이지만 여행에 잘 따르려고 저도 무진장 애를 많이 썼습니다. 형제님 호호호 자매도 나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간혹 나무라기도 하여 여행에 고추 가리를 가끔 뿌리죠. ㅋㅋ 제자의 삶이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였으니 무척 지키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한다고요 호호호
그리고 네팔음식은 처음에는 조금 그렇지만 맛있게 먹었으며 자매는 설사를 조금 하였지만 저는 무기가 너무나 건강한 몸(?)임으로 아름다고 다양한 종교적인 경험들을 하였습니다. 좋은 선교여행을 계획하여 주신 정형제님과 함께 선교여행을 다녀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참여한 모든 이들과 하나님께 고맙고 감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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