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4:21-32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23절)
회개와 속죄를 통해 공동체에 다시 들어오는 것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임을 믿습니까?
저는 감정이 풍부합니다. 작은 일에도 크게 오버하거나 혹은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가정 불화, 승진 누락, 부부 불화, 자식 고난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절대치의 고난을 경험하며 피를 철철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그 고난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담임 목사님과 우리들 공동체입니다.
해석하는 것을 배우며, 저는 그것을 제 삶에 적용하여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카톡에 큐티를 나누면서 저는 '읽어 주시는 것도 섬김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길이니 창피하더라도 무조건 나누자. 집사님들이 읽어주셔서 무지 감사하다' 생각하며 염치 불문하고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큐티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제 삶이 하나 하나 해석이 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 이건 이래서 그랬구나. 아 저건 또 저래서 그랬구나. 네가 그랬었구나. 은미 정말 힘들었겠다. 아이구 저런.. 혹은 은미야 힘내.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자.'
어린 시절 상처와 깊은 내면의 문제들을 하나 하나 다 끄집어 내면서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분노와 피해 의식과 열등감과 증오와 원망을 다 짊어지고 왔단 말이야?
그런데 말씀으로 해석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몹쓸 감정들의 밑에는 저의 교만, 무관심, 무정함, 돈욕심,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저의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또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죄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정체를 밝히는 날은 죄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걸 이제까지 안고, 끼고, 엎고, 지고 살았구나.'
너무나도 버겁고 무거웠던 죄의 짐을 주님께로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예전보다 정서가 많이 안정되고,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안 이제 더 이상 해석할 것이 없다는 교만한 생각에 큐티하는 시간이 아까워 '이제 세상을 향해 달리자!' 했더랬습니다. 큐티를 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제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게으름 병이 다시 도지고 말았습니다.
늦게 일어났고, 딴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일을 할 때에도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큐티를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루 활동하는 시간이 12-14시간 정도인데 그 중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하니 보통 많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면 책도 읽을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고, 못 본 드라마도 볼 수 있고, 밀린 청소와 설거지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드린다는 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큐티를 했을 때, 말씀으로 내면을 청소하고 달려가는 그 기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 때가 좋았지" 하며 저는 다시 큐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저의 큐티 나눔을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제 글을 읽고 저의 문제를 간파하시고 계시다가 제가 목장에서 오면 또 사랑으로 처방해 주시는 목자님, 집사님들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태어난 아기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음으로 교회에 접붙여지듯이 부정함으로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죽은 것과 같았던 나병 환자는 여덟째 날에 온전히 정결해져서 공동체에 접붙여지게 된다고 하십니다. 회개와 속죄를 통해 다시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이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저도 따뜻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적용으로 큐티 말씀을 통해 사건을 잘 해석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도록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1분 동안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