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나 이마 대머리에 색점이 있으면 나병이며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부정하다’를 외쳐야 합니다. 의복에 나병이 발생하여 색점이 생기면 제사장에게보이고 7일 동안 간직했다가 색점이 퍼졌으면 부정하니 불살라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시자 마자 바로 취직을 하셨습니다. 전신전화국(지금 KT)에다니셨는데 공무원 신분이라 이동이 많아서 저는 초등학교를 3번이나 옮겨야 했습니다. 저희 형제가 3남매인데 이사를 가서 전세를 구할 때마다 아이들이많다고 집 주인이 거절을 해서 저는 뒤로 빠지고 두 동생만 데리고 가서 전세를 구하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집을 사기 전까지는 전세방 한 칸에서 5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서지내야 했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술이취해 들어오신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쩌다 술 한잔 하시는 날에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 가족이 제일이라며가족사랑을 외치셨습니다. 너무나 열심히 사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중고등학교때 삐뚤어질 생각은 전혀 하질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충남 아산에서 천안으로 통학을 했는데 여름방학때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 근처에서하숙을 했다가 술에 찌들어서 사는 자취생 친구들을 보면서 여기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어서 2주만에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담배와 술을 전혀 하질 않았고 그 당시는 인터넷이 없으니 야동은생각할 수도 없었고 잡지나 책을 통해서야 음란물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아서 음란물로부터는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모범생이었다기 보다는 아버지가 삶으로 보여주신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거의하지 않았고, 고 2때 시험시간에 컨닝을 하다가 들켜서 며칠정학을 맞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할 정도로 아버지는 모범적인 가장이셨습니다.
지금 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제가 이런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니 술,담배,음란물에 너무 쉽게 오픈되어 있는 아이들을 너무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작년에고 3반을 맡았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고등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학교를 안다니면서 교회에서 여친을사귀어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고, 거기에 따라 예배를 나오다 말다 했는데 이 아이를 보면서 정말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귀찮이즘에 젖어 있는 아이를 보면서 왜 내가 이아이를 맡았는지 정죄하느라 제대로 양육도 못하고, 시간 때우기에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주일학교 교사가 제게는 맞지 않는 섬김이라고 생각했고, 이제는지방에서 근무하고 있고 할만큼 했으니 올해만 하고 그만두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말씀을통해서 제게 얼마나 큰 교만의 색점이 있었는지를 보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큰 죄인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제 마음대로 판단하는 저야말로 ‘나는부정하다’를 외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 좋은부모님을 만나 그 안에서 나름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던 것이었지, 환경이 안좋은 가정에서 자랐다면 어느누구 못지않게 삐뚤어진 성향입니다. 고집이 세고, 직설적인성격에 제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이 제 안에 있습니다.
고등부 교사가 제가 잘나서 주어진 섬김이 아니라 교만한 제 모습이 힘든 아이들을 보면서 그 교만을 내려놓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봉사가 아니라 사명으로 여기고
교사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해 가겠습니다.
적용하기)
- 아이들과 나눔을 2부예배시간에 맞추느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예배시간을 3부로 옮겨서라도
아이들의나눔을 제 시간보다 먼저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