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야 합니다. 피부에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않고 털이 희지 않으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7일동안 가두어 두고, 다시 진찰합니다. 환부가 희어졌으면 제사장이 보고 정하다고 합니다.
오늘 새벽큐티에서 목사님이 사람에 대해 무심하다고 간증을 나누셨는데 제게도 무심함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면 멀어지고 또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다가 멀어지고를반복했습니다. 前 회사에서 26년을 마케팅부서에서만 근무를했으니 아는 직원은 많은데 마음을 터놓고 연락할 만큼 친한 직원이 없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고도아이와 놀아주는 시간보다는 제 취미를 따라 밖으로 돌아다니기에 바빴습니다. 믿기 전에는 아내를 여러번 낙태를 하게 하고도 힘든 것을 위로하기는 커녕 죄의식도 그다지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릴 때 아버지의 사랑이 많이 고팠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가난한 삶을 물려받으셨지만 존경스러울 만큼 열심히 사셨습니다. 전신전화국(지금의 KT)에 다니셨는데 그때는 공무원 신분이라 월급이 적어서 저희 3남매 키우기에도 빠듯했을 텐데도 기죽이지 않으려고 필요한 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다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군에 입대하실 때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셔서 아버지가 제대하실 땐 뛰어다닐 만큼 제법 컸는데 이런 제가아버지는 어색하셨던 것 같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못보시다 보니 그러셨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자라면서 동생들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저와는 많이 다름을 많이 느꼈습니다. 너무 어리신 나이에아버지가 되셔서 그러신 것인지도(아버지와 저는 21살 차이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대학교때 부터는 집을 떠나서 살았는데 방학이 되어서집에 가면 아버지와 그다지 편하지 않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영향 탓인지는 몰라도 제 큰 아이에게 저도 사랑을 많이 주지 못했습니다. 기 죽이지 않게 하기 위해 물질적인 것은 많이 해주었지만 사랑은 많이 주지 못하고, 그 아이에게서 보이는 제 못난 모습이 싫어서 매질도 많이 하고 엄하게 키웠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당신은 첫째 아이와 작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다르다’고 몇 번을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남동생이 몇 년 전에 이혼을 당하고 50이 다 된 나이에계약직이 아닌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한곳에서 정착을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많이 지쳐있는 동생에게 하나님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할려고 할 때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을 볼때면 생색이 나면서 전하기가 싫어집니다. 가족이 전하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될 텐데 제 무심함으로 무소식이희소식이라고 생각하다가 생각날 때 겨우 전하고, 면박을 당하고 그러면 생색내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큰 조카가 올해 고 3으로 고등학교 입학할 때 3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지방 국립대도 어려울 정도로 성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부모의 이혼이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조카에게 큰 아버지로서제대로 관심을 보이지도 못하고 격려의 말조차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이 제 무심함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도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인지 잘 자랐고,
지금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으며 오히려 아버지인 저를 염려해주고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믿음이 없었다면 제게 받은 상처 때문에 저를 멀리했을 것입니다. 믿음은 제 무심함도,
사랑이 적음도 다 이겨내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있어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고 목사님이 말씀 하셨는데 계속되는 레위기 말씀으로 제 안의 죄를보며 무심함이 관심과 애통함으로 바뀌어서 동생을 위해 전심으로 전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 동생에게 형식적으로가 아닌 진심의 마음을 담아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 고3인 조카에게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