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2:1-8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4절)
온전한 회개 없이도 성물을 만지고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위해 험악한 세월이 필요함을 깨닫습니까?
저는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 상처가 있습니다. 왕따를 당한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친구의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는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이 정도 하는데, 저는 엄마가 일하시는 상태로 보살핌도 없이 저 정도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까요? 친구는 미술 숙제가 생기면 자기 숙제를 모두 제가 해 주어야 한다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미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끼며 그 친구 앞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저는 살아남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했습니다. 눈에 튀지 않는 것입니다. 옷도 무채색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잘 해도 못하는 척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독도 같은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저는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중증 상태로, 오히려 독립심이 강해서 그런 것이라며 합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떳떳하게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외로움도 느껴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고 또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바램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처럼 저에게 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저에게 생긴다면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저는 요즘 북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토론하는 모임이였습니다.
제 스타일 아시지요?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나눔만 하면 갑자기 활발하게 변하잖아요.
이 게시판에서는 저를 잘 모르시는 분이 더 많겠지요 ㅋㅋㅋ
거기 가서도 제가 그렇게 했더랬습니다. 당연히 말도 가장 많이 했습니다. 큐티를 하듯 제 삶에 적용해서 말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어머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새롭네요!" 였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의 반응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책을 읽으며 토론 준비를 해 갔습니다. 이번 주에도 갔는데 진행자가 저를 갑자기 토론의 사회자로 지명하였습니다. 저는 6단계 중에 1단계인 초보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초보라고 싫다고 했지만 3주 연속 왔다면 그냥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진행자는 저희 그룹에 떡 하니 앉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사회자로 지명해 놓고는 자기가 사회자인 것처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상도 여자였는데 말을 끊고 맺음이 너무 정확했습니다. 너무 센 억양과 차가운 태도가 무섭기도 했습니다.
제가 얘기해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얘기해도 그렇고 "그러니까 현실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냐구요? 이것이 포인트예요!" 하면서 말을 끊고, 자기가 생각하는 정답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회자로서 토론의 방향과 맞지 않더라도 혹은 틀리더라도 충분히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조언도 얻을 수 있게 하는 토론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진행자는 이런 방식은 아니라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니 나이도 어린 것이 책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으면 다야?' 물론 그 진행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절 가르치려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 나빴던 것 같습니다. '토론의 진행자이면서 토론의 기본도 모르는구나. 너, 완전 재수 없다. 센터에 컴플레인 넣고 싶다.' 하면서 분이 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어야 했지만 제가 깨달은 것에 심취해 말이 너무나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절제가 되지 않는 저의 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다녀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의욕이 상실된 상태로 가사 일에 손을 놓은 채 아이도 겨우 재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야 산혈이 깨끗해지듯이 온전한 회개를 위해서는 험악한 세월의 때가 차야 한다고 합니다(4절). 아무래도 지금은 저의 피해 의식과 패배 의식을 뛰어넘기 위해 필요한 험악한 세월의 때인가 봅니다.
목사님께서는 복음 전할 때, 수치와 조롱을 당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온유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신앙 인격이라고 하십니다. 보편적인 언어로 온유하게 대답하는 이것이 세상을 끌고가는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저도 직장에서 '승진 누락'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이 영역에 대해 열심히 훈련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는 누군가에게 수치와 조롱을 받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놓고 싸우지는 않지만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고 말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의 저의 버리지 못한 성향이었습니다.
적용으로 '그 일'이 제가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위해 필요한 험악한 일이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너 때문이다.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합리화 하는 저의 피해 의식이 죄라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서 회개하겠습니다.
수치와 조롱 속에서 꼬부라지지 않고 배울 것은 잘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