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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9:1-24
그 속제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고(10절)
하나님과 화목이 필요한 지체를 위해 내가 오늘 치밀함과 섬세함으로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제는 딸 아이와 하원하는 길에 몽촌토성에서 산책을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사람이 많은데 딸 아이가 강아지를 만나면 강아지처럼 신나게 뛰어다니기 때문입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주인들은 개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강아지나 나이 많은 개가 큰 개를 만나 놀라면, 주인은 놀란 개를 꼭 안아주며 한참을 진정시켜 줍니다.
강아지가 똥을 싸면 그 똥을 비닐에 싸 가져 가시기도 하고, 똥구멍을 물티슈로 닦아 주시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어떤 주인은 나이가 많아 입맞이 없는 개를 위해 닭가슴살과 훈제 오리를 냉장고에 한 가득 사 놓으셨다고 합니다.
주인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강아지도 나름, 온갖 재롱으로 주인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물론 주인도 그 맛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겠지만, 그런 강아지에게 "니가 주인의 사랑을 알아?" 하고 물어본다면, 강아지는 눈만 말똥 말똥 뜨고 있거나 멍멍 짖기나 할 것 같았습입니다.
개가 주인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와 사람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들은 또한 신기하게도 만나기만 하면 자기네들끼리 으르렁 거립니다.
주인이 "짖지마. 반가워서 그런거야. 가서 인사만 하고 오는거야" 말합니다.
그러면 가서 맞붙었다가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정말 알아듣고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다 알아들어요. 그래서 돌아온 거예요." 하고 말합니다.
개의 입장에서는 가서 맞짱 뜨고 싶지만 그리고 그걸 저지하는 주인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과 사랑 하나로 그냥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3자로서 '하고 싶은 개'의 입장과 '앞을 내다 보는 주인'의 입장이 교차되면서
이 모습이 꼭 저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큐티를 통해 말씀을 통해
들리는 소리보다 더 정확하게 저에게 "가지마. 돌아와" 하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옵니다. 물론 제 맘대로 끝까지 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개들과 싸움이 붙어 피를 철철 흘리면 주님은 이런 저를 매우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제와 번제, 화목제를 차례대로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말씀대로 사는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며,
화목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순서에는 치밀하고 세밀한 작업이 요구된다고 하십니다.
저도 말씀을 들으면 들은 말씀 그대로 치밀하고 세밀하게 순종해야 하는데,
말씀에 내장에 덮인 기름을 '모두'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살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음식 재료를 손질할 때에도 귀찮아서 굵게 깎아 버립니다.
이런 저에게 이 일을 시키신다면 내장에 덮인 기름을 꼼꼼하게 제거하지 못해서
결국 가져올 기름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취사 선택하는 저의 악함과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수고가 없다고 하십니다.
적용으로 목장에서 물질과 관련된 저의 연약함을 계속 나누겠습니다. 목장 처방을 일단 잘 듣겠습니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