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8:22-36
모세가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21절)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23절)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은 후에 의의 귀와 손과 발은 듣는 것을 분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의의 길로 걷고 있습니까?
어제는 뇌졸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신 상사와 퇴사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저는 욕구 불만으로 자학하는 자녀로 인해 육아 휴직을 낸 것이지만 사실은 해석되지 않는 고난에 의한 저의 우울함과 그 우울함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문제였고, 저희 부부의 불화가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면의 문제들, 저 자신에 대한 문제들과 부부 갈등에 대해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들 기가 막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상사는 자기가 크게 아픈 일을 계기로 듬직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남편에 대해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저는 "저희 남편은 제가 응급실에 있는데, 자기는 집에서 자겠다고 하고, 자기는 출근할테니 저보고 링겔 꽂고 가서 아침에 죽을 사 먹으라고 했는데, 선생님 남편 분 정말 좋으신 분 같아요." 하고 저의 고난과 상관없이 맞장구를 쳐 드렸습니다.
저의 고난에 대해 알고 있었던 후배는 "그래서 저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변 선생님 생각해요. '난 문제도 아니다'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받아쳤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라. 그리고 나한테 위로 받아라ㅎ"
분위기를 보자하니 저를 상당히 불쌍히 여기며, 한 마디씩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왜이지? 이상하다. 난 정말 괜찮으니. 왜이지?'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할 말이 생각났습니다.
"전 돈 욕심도 없고 진짜 착한 줄 알았어요."
"그래 너 착하잖아."
"남편이 사람들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고, 저를 돈 버는 기계 취급해서 남편 보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이라고 제가 그렇게 정죄를 해댔거든요.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라며 모든 사람 앞에서 떠들면서 말이예요. 그런데 말씀 보는 가운데 저도 남편과 똑같이 사람들을 판단하지만 표현하지 않을 뿐인 '죄인',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싶었는데 이것도 남편과 똑같은 돈 욕심 부린 '죄인'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남편을 무시한 '죄인'까지..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가 진짜 '죄인'임을 알고 낯 뜨겁게 회개했답니다. 그 전까지 전 제가 진짜 착한 줄만 알았어요. 누구나 돈 욕심이 있는데 저는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남편은 들킨 죄인, 저는 안들킨 죄인이었습니다. 착해서 자칭 하나님 앞에 의인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저에게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저 스스로 저는 정말 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한 말 "네가 나보다 옳도다"의 회개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줄 사람은 우리 남편이 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착하다고 인정해주며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직장 동료들, 저를 지지해주는 친구들을 통해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에게 빚진 자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미웠다 고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선생님은 수술한 의사도 놀랄 정도로 회복되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의사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남편은 고지식하고, 그래서 주고 받는 대화도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너무 듬직하고 자상하며 따뜻하게 배려해 주신다고 합니다. 엄마가 쓰러지는 것을 눈으로 본 아들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슬퍼했지만 매일 병실을 찾아와서, 어린 아이 답지 않게 용기를 실어주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 있는 삭막한 직장인줄 알았는데, 순번을 정해 찾아오고 힘껏 격려하며, 응원하는 선임과 후임들의 롤링 페이퍼에 담긴 진심 어린 글귀가 너무 감동이었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한 직장 상사와 여러가지 오해로 7년 동안이나 힘드셨는데, 그 분이 병실에 찾아오셨고, 애틋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시면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그 분은 스트레스를 무지 받고, 그 상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점쟁이가 말하기를 평생 자신을 힘들게 할 사람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점쟁이가 말한 것과 딱 정반대라며 절대 점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구역 예배도 드리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네? 네? 네?' 하며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질병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깊이 감사할 수 있다니 저에게는 난 곳 방언 같은 얘기였습니다.
제가 고난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 그들에게 난 곳 방언 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고난을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주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번제가 나옵니다. 속죄제가 제물의 부분을 요구한 것에 비해, 번제는 제물의 전부를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가장 향기로운 제사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상징하며, 오른쪽 귓부리,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르고 제단에 뿌리는 것은 주님이 깨끗하게 하시는 삶을 의미한다고 하십니다.
'승진 누락'이라는 고난이 제게 오지 않고 '승진'을 했다면 일 중독이 심한 저는 더욱 자기 의를 견고히 쌓고 기고 만장하며 일을 향해 달려갔을 것 같습니다.
'승진 누락'이라는 고난이 왔는데 말씀이 없었더라면, 아마 저는 패배 의식에 절어 저 자신을 괴롭히며 살거나 혹은 직장을 그만 두고 은둔 생활을 했을 것 같습니다.
고난이 있어서 감사했고, 고난이 있는데 거기에 말씀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식사 모임을 갖고, 딸을 늦게 데리러 갔는데, 그래서였는지 딸 아이의 떼가 극심했습니다. 떼 부리는 아이와 씨름하고, 밥 먹이고, 늦게까지 놀아주고 나니 몸이 피곤하고 등이 너무 아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무래도 어제처럼 그렇게 하는 건 무리였어.' 생각하며 '아무래도 주님 저는 온 몸을 불사르는 번제 같은 헌신은 어려울 것 같아요.' 하며 힘이 빠진 저에게 '많이 피곤하지? 그건 나에게 번제물이였다!' 말씀하시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적용 질문처럼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게 하시고, 의의 귀로 듣는 것을 분별하고, 손과 발로 사랑으로 섬기며, 의의 길로 걷게 하시니 감사했습니다.
적용으로 누군가를 섬길 때는 기쁘기도 하지만 피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겠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