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로마서 10장 14-21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복음의 소식을 들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들과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대조하면서 시편 19편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14절)
2. 어떻게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어떻게 나에게 믿음이 들어오게 되었는가?(17절)
3. 복음을 거부하는 나의 가족과 내 주변의 믿음에 완고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가?
(조급함)
어제 밤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평소 말을 잘 듣지 않는 목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 목원은 예배에 오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변명을 합니다.
(예배에 참석했었더라면) 교회에서 성소를 찾는 것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말씀의 거룩한 떡을 먹는 내용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보통 때 거의 매일 내게 전화로 하는 것과 같이 그 날도 자신의 문제들에 대한
불평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불평하는 내용은 거의 매일 똑같았고 그에 대한 나의 대응도 언제나와 같이 목장과 예배에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자기의 죄를 보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불시에 전화를 해대는 이 목원으로 인해서 저는 괴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가 나를 훈련시켜
주는 것에 대해서 고맙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틀 전에 제가 친구가 이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 목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가구를 옮기는 중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그 말은 관심이 없는 듯이
자신의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차가 많이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게서 또 전화가 왔습니다.
마치 내 여동생이 내게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는 똑같은 몇 가지의 일들에 대해서
반복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두 달 동안 나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동안 두 번의
목장과 세 번의 예배에 겨우 겨우 참석을 했고 그럴 때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보통 담배를 피우러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는 내게 전화를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잠깐의 시간이 짧게는 15분 길게는 2시간으로 대중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 목원에게 조언도 해 주려고 노력하고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나
큐티 본문에 대한 것을 알려주려 했지만 그는 들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가 오직 자신과 자신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서 그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가끔 좌절의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시켜주고 있는 그에게 감사하게
됩니다.(21절) 그 목원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절대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없음을 나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광야를 40일 동안 머무르신 것처럼, 나의 목원인 그는 나를 인내심을 갖고
그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서 말씀에 귀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이 저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내게는 그의 문제가 분명하게 보이는데 그에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그의 문제는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관계에서 단지 그 자신의
문제점들밖에는 볼 수 없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나의 불행한 환경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던 시간들에 대해 기억하는 일은
아직도 제게는 힘든 일입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혹은 최소한 아주 많은 부분에 있어서 나의 삶을 힘들게 했던
그런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가해자가 아닌 완전한 피해자, 희생양이었습니다.
일부 내가 실수한 것임을 인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나 스스로가
문제의 장본인이라거나 혹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어리석게도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는 제자들처럼 내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은 채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만을 기대했습니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을 저는 어리석게도 한 번의 대화를 통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변화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있었더라면 훨씬 더 빠르게 변화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는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 7년 동안 내 죄의 크기와 무게는 보려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사람들에 대한 비난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고통가운데 씨름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나의 죄를 반드시 보아야 하며 내가 처한 환경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해 왔는지와 앞으로 무엇을 꼭 해야만 하는지를 해석해야 한다는 처방이
없었다면 나는 쏙 빼놓고 내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도리깨질하듯 비방하면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지 모릅니다.
적용: 내일 목원이 내게 전화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나의 눈이 구름 속에서 만든 나의 성급한 꿈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더욱 집중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