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25년 매년 겨울마다 한달가량 우리집에 와 계셨던
시어머니께 예수님 믿으라고 했었는데
한번은 제 얘기를 들으시던 어머님이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있냐! 내가 제주도 갈때
비행기 타고 가면서 보니 구름밖에 없더라"
하셨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싶다 이런 종류의 말은 단 한마디도 들어 본적이 없고
같이 사시는 시골아주버님이 논을 산다고 이웃에게 천만원 이상을 시가를 맞았을때도
큰형님이 어머니에게 얼굴도 까맣고 약았다고 ~ " 거기에 더 지나는 말을 하셔도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참 강한 어머니셨습니다.
몸무게가 38kg 정도 나가시는 어머니가 몇년전 기력이 쇠하시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셨던 그 어느 명절에 제가
아주버님들이 차례를 지내고 형님들은 주방과 안방을 오가며 차례를 돕는데
두려워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녹아 형님들이 두려운 중에도
한쪽 방에서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하듯, 우리 인생의 끝에도 돌아갈 천국이 있어야 한다고~~
어머니는 그날 저를 따라 영접기도를 하셨고 이런 찬송도 안다며 나지막히 찬송가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또 몸이 회복 되시고 2~3년 후에 기력이 떨어지셔서
시누께서 서울병원에 모시고 왔었는데
남편이 우리들교회 김은중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고
목사님이 오셔서 목사님 아버님에 대한 간증을 해주시고 어머니 손을 붙들고
눈을 맞추며 간절히 말씀을 전하셨고
어머님은 목사님을 따라 영접기도를 하셨습니다.
지난 구정에 갔을때 " 옆집 경수네 엄마가 죽었는데 남의 일 같이 보이지 않아서
교회를 나가신다고 하시며 앞집 상순네 할머니도 내가 전도했다"며 저에게 막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9/17일 구순잔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어머니 구순 생일 잔치를 축하드리기 위해 모든 가족이 다 모였는데 (40~50명)그곳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남편과 저 ~ 그리고 겨울에만 그것도 일이 없을때만 나가는 시골형님이 전부인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초등학교때부터 봐왔던 형님들은 약간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보았지만
남편이 약간 당황하는듯 하더니 이내 안정을 찾고 우리들교회 수련회에서 하듯 행사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먹고 마시며 잔치 기분을 내려던 형님들의 표정이 좀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교회목사님과 사모님을 잔치에 초대 하셨는데
남편은 먼저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 드렸고 믿는 사람 3명, 목사님 사모님 포함 우리 둘째까지 6명이
전부 였는데 하나님은 그날 본문처럼 결국 승리하셔서
그렇게 교회 다니는 사람을 무시하며 나에게 교회 미쳤다고
마구마구 무시하던 형님을 비롯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목사님께서 드리는
기도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심정를 느끼게 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시골형님 내외와 가족들부터 나오시게 해서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게 하고 소감도 한마디씩 묻는 방식으로 순서를 진행해 나갔고 단지 유흥판으로 끝날
어머니의 구순잔치는 눈물과 감동이 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발언권을 주었을때 전날 저녁 어머니에게 들은것-16살에 시집와서 남편은 남양군도 징병으로 끌려가고 시어머니는 굶기고 때리고 ~남편이 돌아 왔으나 9년 밖에 살지 못하고 갔다고- 을 말하며 그 힘든 중에도 자손들 잘 길러 주시고 남편을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런 어머니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구원을 주시고 이제 천국에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오늘 목사님의 기도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모든 가족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들도 조카들도 남편에게 "삼촌이 교회 다니더니 정말 변했다고 너무 멋있다고 큰 조카는 ' 아버지 칠순을 삼성동 보노보노에서 할건대 삼촌이 사회 봐 달라'"고 까지 했습니다.
진노의 그릇이던 저와 남편을 우리들 공동체를 통해 회개와 양육을 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인정해 주시고 우리를 통해 고생뿐이던 어머니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가 넘칩니다.
살아 있는 말씀으로 회개와 영생에 이르도록
께끗한 그릇으로 빚어 주시는 목사님 공동체 식구들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