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7일 수요일
고린도후서 3:1-6
“그리스도의 편지”
당시 교회에 슬며시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이 추천서를 가지고 고린도교회에 도착했고 사도직을 문제 삼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주장은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자신이 전도했고 양육했던 자들이 자신을 향해 돌을 들었다는 패륜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보통사람 같으면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흐르는 눈물을 슬며시 닦았다. 그리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나 있는 바울을 맹렬히 비난하던 자들 앞에서 편지가 낭독되었다. 의심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단어는 그들의 양심에 파문을 일으켰다.
편지란 어떤 특정한 상대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 말 대신 글로 적어 보내는 것을 말한다. 너희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다. 모든 편견을 버리고 바울을 통해 처음 들었던 복음과 그로인한 변화된 생활을 스스로 돌아보라는 권면이었다. 바울을 향한 비난의 시선을 거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그들은 처음 만남을 돌아보았다. 천막 일을 하면서 무보수로 복음을 전했던 진정한 사도 바울의 사랑을 기억했을 것이다.
기독교 TV를 틀면 유명한 목사들의 주옥같은 설교가 넘쳐난다. 그러나 성도들을 위하여 눈물을 쏟을 목회자가 얼마나 있을까를 돌아보면 회의적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오늘 사도 바울의 눈물 앞에서 진정한 목회자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다.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하였고 그곳에 18개월 동안 머물렀다.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과 같이 장막 만드는 직업을 가진 아굴라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 동업을 하면서 열심히 전도하였고, 그 결과 디도 유스도와 회당장 그리스보 가족을 그리스께 인도하면서 고린도교회가 시작되었다(행 18:1- 11).
자신이 스스로 개척한 교회였고 전도한 양떼였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포기할 수도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쉽게 책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교회의 방문을 연기하면서까지 다툼을 피했고, 편지를 통해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을 향한 그의 열정은 달음박질에서 때로는 멈춰야만 했고, 책망을 접고 오히려 눈물로 자신의 속마음을 절제된 언어로 호소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다. 또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거듭해서 말씀하는 이유는 바로 너희 신분을 확인하라는 간곡한 바울의 음성이었다. 비난하는 목소리를 그치고 너희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 하라는 ‘소명’으로 다시 부르신다.
주님께서도 일전에 산에서 말씀하셨다. 아직 신앙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미숙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소금이 되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너희는 이미 소금이 되었다. 빛이 되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황송한 말씀인가?
오늘 나는 말과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해야한다. 나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향기가 되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