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자
작성자명 [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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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4.24
연 나흘째 감기로 앓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엔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열이 나고 뼈가 욱신거리는게
아무래도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집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방바닥에 불 넣고 드러누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서라기보다는 더 많이 아파버릴까 두려워서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아지기는 커녕 오후가 되니 가래가 섞인 기침까지 나오기 시작합니다.
봄날인데도 날씨는 앵도라져 차갑고 바람과 황사가 심합니다.
스산한 날씨가 내 잠재의식을 건드려 옛날 기억 -- 첨으로 암 판정을 받았던 날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도 봄이었는데도 바람끝은 예리했고 황사가 안개처럼 깔려있었습니다.
오늘 날씨랑 비슷했습니다.
날씨에서 촉발된 기억 회복은 내 몸의 증상에까지 확장됩니다.
몸의 증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기는 거의 걸리지 않고 살았는데, 느닷없이 감기에 걸리고,
지금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었습니다.
스멀스멀 불안이 기어들어옵니다.
재발인가?
며칠째 계속되는 가슴의 통증도 합세해서 불안으로 몰고 갑니다.
재발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때문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그간 면역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발 판정을 받는 것과 그 직후의 시간은 두렵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볼 때 판정 직후의 시간은 육체적 충격을 다스려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의사의 진료실을 나오면서 눈물도 흘려야하고,
살아온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돌아보며 애잔해 하기도 해야하며,
식구들과 친지들의 눈물을 견디어내야 하고,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슬픈 마음을 감추어야 합니다.
어찌보면 하찮아 보이는 과정들입니다.
그러나 제 믿음의 정도는 항상 이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육체를 털어내고 영으로 서기까지의 황량함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었는데, 지금은 육체적으로도 쇠잔해 있어서
그런 황량한 시간의 도래가 두렵습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도 두렵습니다.
말기 암환자에게 있을 수 있다는 지독한 통증도 두렵습니다.
이불쓰고 드러누워
있을법한 시나리오를 생생하게 떠올리며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을 마구마구 어겼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낳은바 된 사람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따르나 봅니다.
말씀을 펼치니, ....
내 상황이나 사고가 동(東)이라면 서(西)만큼 떨어져 있는 마음의 저 끝쪽에서
기쁨이 흘러들어옵니다.
어떤 말씀이 특별하게 나를 위로해서가 아닙니다.
말씀 자체가 기쁨으로 밀려옵니다.
흑암 구름이 있어도 말씀은 살아 움직이시고 말씀 자체의 위력을 발하십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 뵙는 것처럼 마음이 환해옵니다.
참 묘합니다. 주님은 죄없는 곳에 임하신다 하시는데,
염려와 근심이라는 연역함 속에서도 주님 스스로 찾아와 주심을 느끼게 하시니 말입니다.
말씀 그 자체가 충분한 은혜요, 평안입니다.
그러니 어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있는 자가 아니 될 수 있으며,
그분을 경외함으로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감기도 감기이지만 왼쪽 ㅗ름넘게 지속되고 있는 왼쪽 가슴의 통증이 신경쓰입니다.
며칠 더 추이를 지켜본 후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받거나
아니면 한달 후에 있을 정기검진에서 검사를 받거나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