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일 목요일
고린도후서 1:1-11
“모든 성도에게”
천오백 년의 시간을 가로질렀다. 유다 땅을 벗어나 유럽의 중심지 고린도로 시선을 돌렸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다. 부활로 완성된 구원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땅 끝을 향하여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등장하는 무대는 바로 고린도교회이다.
사사기적 눈으로 바라본 고린도교회는 어떤 형편이었을까? 신화가 창궐하던 다종교에서 내려와 이제 막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교회였다. 파당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나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누어져 분쟁을 일삼았다. 철부지성도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교회이기도 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 파문을 당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예루살렘 성도들이 흩어졌다. 로마라는 한나라로 편입된 수많은 종족들을 향하여 복음이 편만해지기 시작했다. 로마의 힘으로 상징 되었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복음의 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으셨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대로 환란을 통해서도 일하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 바울과 디모데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신다.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었다.
열한 절에 ‘위로’라는 단어를 무려 열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환란과 고난이 그들의 삶 가운데 숙명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자신들의 그릇된 선택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사기적 환란이 아니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분연히 나섰을 때, 찾아온 고난이었다. 여러 번의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극적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열심은 주님과 닮았다. 십자가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셨던 주님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전해야만 하는 ‘복음’이었다. 그 간절함이 고린도교회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고난은 은혜를 담는 그릇이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다. 성숙의 도구로 삼으셨다. 오늘도 땅 끝, 복음의 최전방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용사들을 바라보자. 선교사들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멈추지 않는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아직 한국 땅은 그물만 던지면 고기를 낚을 수 있는 복음의 황금어장이다. 생명을 걸지 않아도 죽어가는 영혼을 건질 수 있는 ‘복음의 땅’이다. 복음의 불을 지펴야만 한다.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자. 쓰나미처럼 세상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천만 동포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야만 한다.
‘부산행’이라는 좀비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한다. 다소 끔찍한 장면이 넘쳐나지만 고린도후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모르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의 절규처럼 다가온다.
살았다고 다 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땅 끝은 저 넘어 뿐만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음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