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4일 수요일
사사기 20:1-11
“거짓 분노”
레위인의 첩의 시신이 나누어져 각 지파로 보낸 사건은 온 이스라엘을 들끓게 하였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공분을 느낀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다.
회중 앞에서 레위인은 기브아 불량배들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직한 고백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감춘 채 실상을 부풀리고 왜곡했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첩을 그들에게 내어준 비겁함에는 침묵했다. 이른 아침 첩의 안위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가려했던 무정함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기브아 불량배의 죄악을 베냐민 전체의 잘못처럼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레위인으로서 첩을 취한 자신의 잘못은 간과했고 그녀의 간음에도 불구하고 정죄하거나 죄를 묻지 않았다. 첩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전후를 살펴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사사기 20:5-6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처를 사지에 던져놓고 자신만 살고자 했던 무정한 행동은 은폐했다. 그의 분노는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일종의 기만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첩의 시신을 찢기에 앞서 자신의 가슴을 찢어야만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는 삼손과 블레셋의 싸움 앞에서 오히려 이방인의 편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순과 맞닿아있다.
오늘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족을 향하여 돌을 들었다. 칼을 빼는 군사가 40만이라고 했다. 온 이스라엘이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짓밟힌 여인은 바로 자신들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보복의 칼을 들기 이전에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는 것이 옳은 순서였다. 블레셋의 힘에 굴복해 이방인들에게 영토가 짓밟혔음에도 독립을 위해서 몸부림친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버린 무능한 자신들을 책망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여쭈었다는 대목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삶 언저리로 밀려나고 자기의 소견대로 결정하고 행동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와 말씀이 부재된 사사기 시대의 자화상이다.
명분 없는 싸움이 시작되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