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3일 화요일
사사기 19:10-30
“거짓 사랑”
적나라하다.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자세하게 기록했다. 너무나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빼도 될법한데 굳이 이곳에 기록으로 남기셨다.
욕정에 이끌려 첩을 취한 레위인은 첩이 이웃 남자와 정을 통하고 떠나자 그녀를 다시 찾고자 에브라임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장인의 환대를 받고 여인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날이 저물어 유숙할 곳을 찾던 그는 가까운 이방인 도시였던 예루살렘을 지나 기브아 땅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불량배들에 의해 동성간의 성관계를 강요받게 되자 자신의 안일을 위해 첩을 내어주고 만다. 사랑을 찾아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어려움에 처하자 취한 행동은 레위인의 사랑이 허구였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레위인은 일정부분 신앙인의 자세를 보였지만 또 다른 한편은 불신자만도 못한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윤간을 당한 그녀는 죽음에 이르렀고 분노한 레위인은 이러한 실상을 고발한다는 명분으로 시신을 열두 덩이로 나누고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보낸다.
그러나 그는 첩이 고통을 당할 때 잠을 청했다. 그가 잠에서 일어났으나 첩의 안위여부는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첩의 죽음을 보고 분노했다는 것은 레위인이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돔과 고모라의 땅처럼 죄악으로 관영한 가나안을 심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세우셨음에도 그들마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천인공노할 사건이 이방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스라엘의 성문화의 단면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공분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실상 드러나지 않은 나의 죄성을 들여다보면 저들과 별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동성애자들을 표현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축제가 열린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성문화를 옹호하는 현시대를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눈으로 보아야만 할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죄악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들을 향해서 돌을 거두어야한다. 우리가 볼 때는 큰 죄, 작은 죄로 나누어 정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심판하신다.
그렇다면 저들 역시 나와 똑같이 구원 받아야할 죄인들이라는 것을 받아드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릇된 성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사랑으로 나아가야한다. 죄인이라고 정죄하기에 앞서 저들의 아픔을 질병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솔선모범을 보여야했던 레위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 단추가 잘못 꿰진 행보로 인해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회개했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사건의 결론을 기브아의 불량배에게 돌렸다.
오늘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돌을 든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한복음 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