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0일 토요일
사사기 18:14-31
“마땅히 행할 것”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사사기 18:14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행할 것이 ‘도적질’이었다. 정탐을 나왔을 때, 예전에 눈여겨보았던 에봇과 드라빔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십계명은 더 이상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잃어버리자 그 자리에 탐욕이 자리 잡았다. 죄의 특성상 미가 한 가정의 일탈이 단 지파로 확산된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마다하고 자신들의 눈에 드는 땅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허락하신 복이라고 포장했다.
이 일을 위해 일전에 다녀간 다섯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의 에봇과 드라빔을 약탈했다. 항의하는 제사장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이 레위인은 놀랍게도 모세의 증손자였다. 정통적인 신앙을 물려받은 명문가정에서 자라났으나 그에게 더 이상 종교는 무의미했다. 겉으로는 항의했지만 개인제사장에서 한 지파의 제사장직을 오히려 기뻐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따라나선다. 신앙의 가치는 무너지고 돈과 명예가 우선시 되는 길을 걸어갔다.
종교가 권력과 하나 될 때, 부패가 시작된다.
단 지파는 땀 흘려서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약탈로 시작한 죄악은 보기에 만만한 라이사라는 마을을 습격한다. 하나님께서 심판하라고 명령하실 가나안 땅을 버리고 평화스런 마을에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보다 힘과 이익의 논리가 그들의 행동수칙이었다.
그들에게는 제사장은 더 이상 이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죄를 덮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약탈과 살육,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민낯의 세상이었다. .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사사기 18:21
약탈한 물건을 앞장세웠다. 어린 아이들과 값진 물건을 앞세웠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는 이처럼 눈이 밝았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막는다. 기복신앙의 끝은 혼합주의로 완성되었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한 헤렘 전쟁이었다. 더 가지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큰 재산이었던 가축까지도 죽여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 단 지파가 라이사 마을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살육의 현장인 것이다.
우리 역시 기독교가 내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면 단지파와 다를 것이 없다. 왕이 없는 시대란 말은 내 삶을 지배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라는 권면의 말씀이시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동기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이라면 자기 소견대로 살아갔던 사사시대와 똑같다는 경고이시다.
오늘 내 손에 들려진 ‘마땅히 행할 것’을 분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다. 듣고 또 듣는다. 묵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시편 1편에서 선언하신 ‘복 있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