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2일 월요일
사사기 19:1-9
“하나님의 넋두리”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로 시작된다. 이 한 마디에 담긴 하나님의 슬픔을 읽는다.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실패의 이유가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사사시대를 한마디로 요약한 하나님의 넋두리시다.
길우야! 너는 오늘 나를 왕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니?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내 마음을 두드리신다. 새벽 말씀 앞에 설 때만 경건하고 교회 문을 나서면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이상한 신앙생활을 나무라신다.
오늘 레위인 한 가정에 비친 당시의 성문화를 통해 종교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걸친 문란했던 이스라엘의 현장을 고발하신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하리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경제생활이 윤택해졌음에도 이웃과는 담을 쌓고 각박해져만 가는 현실을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지난 100년의 시간이 천년을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인간성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과학의 발달과 인간성을 한마디로 정의한 글을 읽었다. 배꼽이상은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루었지만 배꼽아래는 옛날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도 오늘 등장하는 레위인 가정을 통해 오늘의 성문화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레위인의 첩으로 들어왔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이웃 남자와 정을 통하고는 남편을 떠나 베들레헴 친정집으로 돌아가서 넉 달 동안 지냈다.
행음한 자는 마땅히 돌로 쳐야하는 율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첩을 잊지 못하고 다시 데려올 요량으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난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그녀를 데려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레위인이라면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야하는 종교지도자였다. 더욱이 레위인이 율법을 어기고 첩을 들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부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가나안을 정복해야할 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스타급 목사들의 성추행 사건은 예전이나 오늘 조금도 변하지 않은 우리들의 문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입으로는 거룩을 강조하고 소리를 높이지만 한편으로는 밤의 문화를 즐기는 이중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오늘 하나님께서 큰 목소리로 경고하고 계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요구하신다.
세상에서 하늘 길을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