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8일 목요일
사사기 17:7-13
“신의 사유화”
“배달, 경비원, 택시운전, ‘투잡’에 고달픈 목사님”
오늘 국민일보 미션 라이프의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이다.
‘목회자 이중직, 지금 교회는’ 일하는 목사님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미자립교회 80%인 현실에서 가족 생계비, 목회비용은커녕 교회 월세도 힘든 목회자가 많다고 했다. 현장선 ‘허용’ 목소리 높지만 ‘부업하면 목회 전념이 어렵다’는 이상론 때문에 기감 등 3개 교단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교단 따로 현장 따로 괴리감이 바로 한국교회의 실상이자 개교회주의가 보여준 또 다른 한국교회의 아픔이다.
오늘 등장하는 레위인 역시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베들레헴을 떠나 미가가 살고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 도착했다. 그가 사역지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호구지책’ 때문이었다. 모세가 모든 지파에게 땅을 배분할 때,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기업은 열한지파의 예배 중에 드려진 헌금으로 충당되도록 하셨다.
이러한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 열한 지파는 산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 장치를 마련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교회가 붕괴되고 예배가 사라지자, 레위인들은 살길이 막막해졌다. 삼손을 통해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영적상태를 고발하셨다면, 오늘은 방황하는 레위인을 통해 사사시대의 광범위하게 일탈된 개인적인 종교생활을 폭로하신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서 수종 들어야할 그들이 설 땅이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그에게 미가의 개인적인 제사장직 제의는 솔깃하였고,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위해 그는 종교 브로커로 전락하고 만다.
기복신앙이 빚어낸 신의 사유화가 보편화된 시대였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뿐이고 미가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단순히 복을 주는 도구로 삼아버렸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사사기 17:13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과도 많이 비슷하다. 삼중 복음을 외치며 시편이 지적하는 ‘복 있는 사람’과는 또 다른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돌아보면 내 개인적인 기도생활 역시 미가의 영적상태와 별다를 바 없음을 발견한다.
주님께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보다는 나의 필요를 요구하기에 급급했다. 대부분이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에 치중한 나의 기도생활은 사사시대와 다름이 없다.
한 손에는 천국을 다른 한 속에는 맘몬을 가지고 저울질 하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돌이켜야만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두 갈래 길에서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좁은 길을 걸어간다.